Tuesday, November 27, 2007

한국 대선에 관하여

이명박은 아닌거 같다.

나중에 더 쓸 기회가 있으려나... 기회가 되면 더 쓰겠지만 몇가지가 있다.

1. 한나라당이다: 이거만으로 나한테는 점수 수백점 깎아먹는다. 어떻게 독재세력 잔재들과 같이 '정당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그 사람의 성향을 떠나서 꼴통짓이라는 거다. 고승덕도 이번에 호감 급하강;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거야 우매한 국민들일테니 상관없는데, 그쪽이랑 인연 맺으면 난 인간으로 안본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제1야당으로 자리매김한 마당에 사실 정치의 한 축으로 인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중에서도 이명박은 비리가 엄청 심하네. 게다가 말바꾸기도 심하고. 하여간에 이 사람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3. 머 현대 재직중의 경제 삽질은 차차 드러나는 듯 하고...

4. 무엇보다 믿을 수 없고 정보를 악용하여 사리를 추구하는 행태(주가조작 등)는 절대 용서가 안된다. 요즘 사회는 정보가 한곳에 집중되는 고도의 정보화사회이고, 이런 사회는 편리한 만큼 정보에 대한 독점적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이 그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때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고도로 정보 시스템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한사람이 도덕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IK

미국에 있는 사람이 미국에 있는 서버에 대선 관련 이슈를 쓰는게 불법은 아니겠지;
사실 불법이어도 상관없다.

시시껄렁한 일상얘기 11/26/07

아아아 오늘은 뭔가 글을 안쓰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1. 지난 3년간 나의 뇌-_-를 대신해줬던... Thinkpad T42가 거의 죽었다. T61을 새로 산 이후로 리눅스 깔아서 나름 잘 즐기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화면이 갑자기 꺼지더니 확률적으로... 전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bios가 로딩이 안되고, 생각해보면 며칠 전부터 리눅스가 가끔 graphic chipset을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한두번 있었는데, 이번에도 죽을때 꼭 화면을 깜빡이면서 죽는 것이, 확실히 이건 메인보드 문제다. 일단 하드디스크에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를 뽑아내는게 문제인데, 이게 ext3fs라서 윈도에서 안읽힌다. 리눅스 깔린 연구실 컴퓨터로만 작업이 가능하겠군...
데이터 백업하는 거야 사실 원칙적으로 가능한 얘기고 하드가 죽은게 아니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하면 안될일이 아니니까 걱정이 없는데, 그냥 3년간 쓰고 지난 두달간 리눅스 테스트베드로 잘 활동해줬던 Curie가 죽으니까 마음이 아프다. 아흑흑흑흑.

2. 오늘 잠시 T42의 죽음과 함께 패닉이 되었던건, 내일이 APS 2008 Abstract due였기 때문이다. 사실 WinEdt나 Lyx하고 Miktek을 같이 쓰면 윈도우에서도 TeX작업이 무리없이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방면에서 리눅스가 훨씬 더 편하기 때문에... 특히 요즘 Ubuntu는 apt-get 덕분에 소프트웨어 설치도 훨씬 쉽더라고. 쉬워봤자. 다운로드 누르고 기다리고 클릭하는 시간이 없어서 좋다는 의미이지만. 하여간 그래서 T42에서 계속 작업하고 있었는데... 모든 데이터가 그쪽에 있어서 순간 패닉에 빠졌다. 다행히 이틀전에 프린트해놓은 하드카피가 있어서 그거가지고 proof-reading하고 마무리했지만. 아무래도 작업에 손실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당장 최신 update된 파일을 access를 못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동시에 데이터 정리가 안되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지금 뭐가 최신 업데이트인지 나도 헷갈려. 종이, 랩 컴퓨터 등등에 두세개로 분산되어버렸다. 아나 이런. 이렇게 organized되지 못한 느낌은 처음이다.

3. 그냥 오늘 교수님도 무슨 일에 짜증이 났는지 나한테 자꾸 까칠하게 굴더라고. 나도 좀 짜증났는데 참아야지 어쩌겠나.

4.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abstract는 꼭 마지막 시점에 submit하게 되는군. 사실 지금 submission하고 싶었는데, 최신 파일이 랩 컴퓨터에 있고, 생각외로 연구실 밖에서 ssh가 안되게 설정이 되어있나보다. 그래서 내일 하기로. 하긴 그러고보니 어떤 섹션에 낼지 교수하고 합의 봐야겠구나. 뻔하긴 하지만. 이 어쩔 수 없는 마감인생에 살짝 한번 더 짜증.

IK

Sunday, November 25, 2007

악기를 다루는 테크닉에 대한 단상

요즘 연습하는 곡에 대해 쓴 김에 하나 더 쓰고 싶다.

며칠 전 이야기다. 내가 아래서 말한 코렐리의 라 폴리아를 연습하고 있는데 J누나가 잠시 우리집에 들렀다. 나는 serious하게 연습하는 경우 중간에 끊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잠시 J누나는 내가 연습을 마칠 때까지 내 연습을 감상했어야 했다. 하여간 내가 연습을 마치고 J누나가 말하길,

"일두 실력이 좋아진거 같아"

흠, 그럴만도 하지. 내가 악기를 취미로 가진지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가는데 몇달만에 실력이 늘을리가 없지만, J누나는 내가 코렐리를 연주하는 것을 처음 봤을 거다. 그동안 J누나가 본 내 바이올린 하는 모습은 내가 이자이를 가지고 헤메는 모습이었을 거다. 아, 몇년간 연습 안한 바흐 소나타로 괴롭혀준 적도 있다. 아, 파가니니도 -_-

하여간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실은 내 실력이 는 게 아니라 곡이 쉬운 거라고 이야기를 하노니, 왜 평소에 어려운 거만 하느냐는 질문을 하시더라고. 뭐, 사실 딱히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던 거 같다.

"할 줄 아는거 또 하고 또 해서 뭐하겠어요. 그런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뭐, 잘 모르겠다. 악기를 하는 이유가 사실 자기가 즐기는게 목적일텐데, 나는 그보다는 그냥 연습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거 같기도. 일단 몇개의 생각을 적어본다.

1. 나도 일단 스스로 즐기기 위해 악기를 한다.
2. 근데 내가 못하면 나 스스로 괴롭다. -_- 그래서 일단 연습은 해야한다.
3. 다른 사람과 같이 연주하는 기쁨이 상당히 많다. 다른 사람과 맞춰서 하려면 그만큼 또 잘 해야하고 그럴려면 연습을 해야한다.

공연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좀 다르다.

1. 나는 연습을 시작해서 다듬어서 일주일 내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거라면 '내 레퍼토리'라고 생각한다.
2. 모든 악곡을 바로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연습을 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항상 웬만큼 하는 곡을 연주가 없음에도 연습하는 거은 시간낭비고 평소에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다.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일단 악기는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악기를 잘 다루게 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기교 없이 음악이 표현 안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술이 음악을 표현하는 기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건 수학과 물리를 똑같이 대비시킬 수 있는데, 마치 물리없는 수식이 물리학자한테 별 의미가 없지만, 물리를 잘하기 위해서 수학적 바탕이 튼튼해야 하는 것과 같다.

물리에서 수학과 물리적 감각 모두 부족한 것을 느끼는 것과 같이 바이올린을 함에 있어서도 기술이나 음악 모두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음악적 감각이나 물리적 감각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고 진도가 더딘데 반해 수학이나 손가락의 무공 등의 테크닉을 익히는 과정은 비교적 빠르다. 그래서 아마 당장 성과가 보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진심으로 물리적 감각이던 음악적 감각을 타고 난 '천재'들이 부럽다. 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며 천재가 될 수 없다. 타고 날 수 없었다 해서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 돌아가는 길이 길 뿐이지.

IK

Saturday, November 24, 2007

샤콘느와 폴리아

언제나 음악 관련한 글을 쓸때는 좀 조심스럽다. 내가 취미로 음악을 오래 하긴 했지만,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경험은 일천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음악에 관한 글은 모두 다 '잘 모르지만'이 앞에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하여간.

요즘 열심히 연습하는 곡이 Arcangelo Corelli의 Violin Sonatas, Op.5 인데, 전체 짧은 곡 12개가 모여있고, 전체 곡을 다 연주하면 대략 2시간 분량이 될 것이다. 키보드 반주가 있으며, 그 중에 제일 유명한 곡이 la folia라는 곡이라는 것(Op. 5, No. 12)과 그 곡이 제일 유명하긴 해도 다른 곡들도 다 음악적으로 좋다는 면에서 약간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와 유사성이 느껴지곤 한다. (아 물론 연주하기는 바흐가 대충 10^3배 정도 더 어렵다.) 하여간,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대표하는 곡이 샤콘느라면, 코렐리의 소나타를 대표하는 곡은 폴리아라 할 수 있는데, 두 곡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비슷한 형식의 변주곡이라는 것이다.

코렐리의 폴리아는 바흐의 샤콘느보다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연상시킬 정도로 각 변주들의 경계가 명확하고, 변주들 간의 화음의 통일성이 돋보인다. 물론 이것은 바흐의 샤콘느가 아주 highly nonlinear한 변주라서 주제와 변주가 많이 어울어졌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긴 하다. 실제로 비탈리와 샤콘느와 코렐리의 폴리아 사이에서는 상당히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테면,

1. 주제가 맨 처음부터 아주 명확하게 제시된다. 하지만 바흐와는 달리 맨 마지막에 반복을 하진 않는다.
2. 주제의 화성을 따라 변주가 제시가 되는데, 주로 아르페지오를 이용하는데 triplet의 사용이 매우 빈번하다.
3. 반주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때로는 멜로디를 맡기도 한다.
4. 아르페지오가 monotonic하게 상승 혹은 하강하지 않는다. 한 화음을 펼친 아르페지오 안의 각 음을 다시 한번 아르페지오로 펼쳐줬다는 의미에서 초기의 폴리포니의 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체적 구성은 모노폴리이다.
5. 변주의 개수가 20여개로 비슷하고, 각 변주 간 구분이 상당히 명확하다. 비탈리와 코렐리 공히 겹세로줄로 구분을 하고 있으며, 악상을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6. 마지막 변주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의 폴리포니가 제시된다.

어찌 보면 시기적으로 비슷한 두 작품이고, 문화적 배경이 비슷하니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같은 샤콘느지만 바흐와 비탈리는 상당히 구조적으로 유사점을 찾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고, 코렐리가 비탈리와 비슷하다면 바흐와 유사성을 찾기는 비교적 어렵다. 이는 내 의견으로는, 바흐의 샤콘느는 완전한 형태의 폴리포니이기 때문에 멜로디 위주의 변주보다는 화음 위주의 변주를 구사했기 때문인가 하는데, 여전히 몇몇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1. 일단 바흐 역시 주제의 제시가 명확하다. 바흐는 하물며 마지막에 반복도 해준다.
2. 바흐 역시 아르페지오의 사용이 눈부시다.
3. 마지막 변주에서 세 곡 모두 일종의 hilight을 두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마지막 변주는 세 곡 공히 매우 빠르며 기교적으로 난해하다.


하여간 잘 연주했던 아니던 간에, 비탈리와 바흐의 샤콘느를 공개석상에서 연주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코렐리의 곡들을 무대에서 연주해야할 숙명을 가지고 있는거 같다.-_- 무대 위에서 연주했다는 것은 연주의 품질을 떠나 내가 그런 곡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역시 코렐리의 곡도, 그만큼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 같다. 일단 Sonata No.5 안에 있는 12개 곡 중에 No.7부터 No.11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서 한번 읽는데 어렵지 않았다. No.1은 오늘 좀 읽어봤다. 1~6번은 7~11번보다는 어려운 거 같다. 10번의 4번째 악장 가보트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음악' 멜로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멜로디이다. (사진 참고)

12번 폴리아는, 스즈키 6번에 간추린 버젼이 나와서 바이올린 배우는 사람들은 비교적 익숙한 곡일텐데 사실 스즈키 버젼과 원곡은 좀 다르긴 하다. 요즘 연습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리 쉬워보이는 곡이라도 깔끔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포지션에서 더블스토핑 할 때 새끼손가락을 사용하는 경우 음정이 자꾸 불안해지는데 그걸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트리플렛을 어떻게 보잉하느냐는 언제나 문제라는 거다. 폴리아 같은 3박자 춤곡의 경우 트리플렛을 한활에 연주하면 이번 마디와 다음 마디의 시작활 방향이 다르게 되고, 2-1로 끊어서 연주하자니 마지막 음표가 좀 거세져서 걱정이다. 그리고 첨부한 악보는 내가 폴리아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데, 그냥 올려본다. (dolce부분)

아 마지막으로 이 음악이 어디서 나오는 지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면 감사. 며칠전부터 머릿속에서 막 맴도는데 어떤 곡에서 나온 것인지 기억이 안난다. 급히 앙코르로 발로 그렸지만... 클릭해서 보시면 잘 보입니다.

Edit on 11/25/07: 이거 뭔지 찼았다. Vivaldi, L'Estro Armonico, No.3, Concerto No. 7 4. Allegro

IK

시시껄렁한 일상얘기 외전 - Visiting New York City

NYC 갔다왔다. (11/22/07-11/23/07)

흠, 이번이 이제 서번째로 갔다오는건가. 네번째인가. 하여간 대충 그정도 횟수로 갔다왔고, La Guardia공항으로 갔다오기는 처음이었다.

NYC를 가면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이 고향의 향기...인데, 사실 서울과 비교하면 뉴욕이 좀 기분나빠하겠지만, NYC를 가면 그런게 느껴진다. 정신없이 달리는 차들, 멀미나는 택시, 매퀘한 매연을 뿜으며 지나가는 버스, 그리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지하철. 이런 것들이 다들 너무 가슴을 막히게 하고 기분이 나쁘게 하지만, 그 뭔가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약간, 아니 상당히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서울에서 나서 주로 서울에서 자랐으며, 수원이나 대전같은 '비교적' 소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전원적인 소도시를 동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고향 서울의 익숙한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 거 같다.

뭐, 내가 패션이나 금융 그런거에 전문가도 아니고, 그런 면에서 뉴욕이 나한테 항상 새로운 볼거리를 던져주는 도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뉴욕에 차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자주 가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자주 가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가봤자 나한테는 그게 그거인 패션, 시각예술들, 아니면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수많은 일자리들. 중국같은 테크노크라트도 아닌, 미국의 경제 문화 수도인 뉴욕이 나한테 별 매력이 없는 도시라고 하면 참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게다가 문화는 며칠 관광하면서 느껴지는게 아니라 그 일부가 되어서 몇년 단위로 같이 지내봐야 느껴지는 거라는 지론이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전 세계 모든 곳이 나한테 관광지로서 그다지 매력은 없다. 뭐랄까.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이고, 각 지방별로 사람들 다르게 사는거 당연한데 그런걸 직접 보면서 굳이 감탄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사실 사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문화적 양식은 다른 도시를 가보기 전에 그냥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많이 새로운 것을 느끼게 된다.

(정말 여행 혹은 체류하고 싶은 곳이 한군데 있다 - 남극! 예전에 어떻게 남극 대원으로 파견 못가나 하고 홈페이지 가보니까 내가 도움될 만한 리서치 분야는 없긴 하더라.)

하여간. 그래서 이번엔 뉴욕에 왜 갔는고 하니, 영국에서 박사과정 중인 황인찬군(흠, 차마 여기선 별명을 못쓰겠;;;)이 놀러와서 보러 간건데, 내가 요즘 경제사정이 안좋은지라 비행기표를 아끼느나고 American Airline Mileage 티켓으로 끊느나구 저녁에 도착해서 밤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도착해서 인찬군과 그 무리들한테 전화를 해보니 이미 무려 타임스퀘어의 '레드롭-_-스터'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신촌 아웃백'들어갔다는 느낌이라 살짝 피식하고 LGA공항에서 택시를 탔는데,.. 무서웠다. 그 순간 서울 생각이 나면서 막 고향에 온거 같은 익숙함? -_- 게다가 LGA공항에서 다운타운 들어가는 길은 좀 낙후되서 뭐랄까. 구로동 영등포동 뒷골목을 차로 가는 거 같았다고나 할까...

하여간 대충 저녁 먹고, 밤에는 황군의 의도에 따라 'HA'라는 '코메디 클럽'에 갔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나서 황군의 숙소에 와서 침대에 누워서 잤(다고 하겠)다. 역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감미옥을 가서 설렁탕과 순대와 수육과 빈대떡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간 '감미옥'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렁탕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 국물의 깊이가 부족했나? 하지만 아침이 매우 추웠기 때문에 (아마 썹시 0도 근처) 좋았다. 빈대떡과 수육은 괜찮았고, 순대도 괜찮았는데 다만 간이 좀 더 촉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_-

그리고 나서 스타벅스에서 잠시 시간 보내다 헤어져서 그 친구들은 Ithaca로 가고(거기가서 뭐 할게 있다고 가는건지..) 나는 LGA공항에서 시간좀 보내다 밤 비행기 타고 돌아왔다. 피츠버그에 돌아오니 잠시 눈이 왔었나. 날씨는 춥고 공항에 세워둔 차는 완전히 얼어서, 문짝부터 안열리는 거다(마침 어제 공항으로 오는 길에 비가 왔었다). -_- 힘으로-_- 문을 열고 트렁크를 열어서 창문에 붙은 얼음을 긁는데 긁어지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시동 켜놓고 난방 틀고 한 20분 기다리니 좀 녹더라. 그렇게 겨우 돌아왔다.

하여간. 시시껄렁한 여행기 끝. 플러싱에 가서 교촌치킨 먹으면서 맥주 한잔 하고 싶었는데 미션 실패. 이건 한국 가서 해야겠다.

IK

Wednesday, November 21, 2007

시시껄렁한 일상얘기 11/21/07


땡스기빙이다. 추석때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이 어떤 기분인지 알 거 같다.

그리고 진짜로 시끄러운 학부생을 안봐도 된다는 사실과 거리가 좀 조용해진다는 것, 그리고 주차공간이 많아진다는 점에서 방학이나 이런 연휴가 좋아지는 걸 보니 나도 꽤 성격 안좋아진거 같다. 원래 좋지도 않았지만.

싸이월드에 들어가면 '최근 업데이트된 일촌' 목록이 뜬다.
뭐, 한국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게 떠서 들어가봤는데 (나름) 기대하던 미니홈피 주인공의 사진은 없고 쓸데없이 퍼온 사진이 있는다거나 하면 살짝 짜증이 난다. -_- 이렇게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잡것들 모아놓으려면 뭐하러 싸이를 해! 하면서 말이다. -_-

물론 그런 면에서 사실 나도 그닥 다르지 않긴 하다. 나도 싸이월드를 가끔 없데이트(없;; 오타 아님-_-)를 하지만 내 사진을 올려본 적이 별로 없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지만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일상을 따라다니는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빈도가 좀 낮은 편인거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종종 이런거 써볼까 해서.

하여간, 최근의 근황.

1. 대학원 생활은 언제나 안바쁘면서 바쁘다. 엊그제 그룹미팅 발표를 했는데, 요즘 랩에서 관심이 높아진 Game Theory에서 이야기하다보니 길어져서 다음주에도 또 하기로 했다. (이런게 최악의 그룹미팅 발표 수순-_-) 그리고 나서 다음주 그룹 안에서 터뷸런스 스터디 모임 발표도 하게 되서 다음주에는 목이 좀 아플거 같다.

2. 지난주에 나보다 랩에 한 3년정도 일찍 들어온 Emily가 doctoral defense를 했다. 이 친구는 80년생 미국 여자앤데, bacteria-phage population dynamics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 친구가 졸업함으로서 나는 이제 연구실에서 두번째로 연차가 높은 사람이 된다. 나보다 연차가 Suddho가 1년 내로 졸업할 거 같으니... 나도 이제 슬슬 좋은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PNAS나 Science Nature가 예전까지는 dream이었는데,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3. 하여간 27일이 내년 APS abstract due인데, 지금 하나는 다 써서 이제 다음주 화요일 이전에 submission만 하면 되고, 다른 하나는 몇몇 포인트를 좀 확인해서 쓰기 시작해야한다. 아마 월요일까지는 다 마무리해야겠고. 내년 APS는 New Orleans다. 재미있는 도시일 거 같다. :) 나중에 APS 오게 되는 사람 확정 되면 누구누구 오는지 알려주길. 미리미리 알고 있어야 지나가다 만나도 안놀래지. 아니면 뉴올리언즈 거주자 계시려나?

4. 나는 펜을 씀에 있어서 딱히 뭔가를 가리는 성격은 아니긴 한데, 다만 대학교 1학년때 파커 볼펜을 사서 매년 리필하여 사용하고 있다. 모나미니 BIC니 하는 볼펜 안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옆에 있으면 당장 집어 쓰는게 맞긴 한데, 그래도 뭐랄까 징크스랄까. 시험을 보거나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거나 할 때는 그 파커 볼펜을 쓰는 편이다. 왜냐면 그 펜이 좋아서라기보다, 오래 써서 필기감이 익숙하고, 내가 오랫동안 쓴거라서 내 자아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지금 쓰는 파커 볼펜은 석사 1학년때 다시 산거다. 그전에 쓰던건 나를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줬다.) 하여간. 오늘 Cross에서 나온 20불짜리 볼펜을 하나 사봤다. 얼마나 잘 쓰게 될지.

5. 내일 뉴욕간다. 대학 동기 황모군이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놀러온다길래, 나도. 하루 일정임.

흠... 대충 여기까지. 요즘 근황.

IK

Saturday, November 17, 2007

과학자와 예술가

고등학교에서 이과/문과를 나누는 덕에,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이공계와 인문계를 나누는데 익숙해져있다. 사실 인문계, 경영계, 이공계, 의학계 등등 세부적으로 더 나뉘긴 하지만 이공계 사람들이 아닌 이상 이학과 공학을 나누는 경우는 드물지 싶다.

사실 나는 하드코어 물리학도로서 그러한 이공계를 뭉뚱거리는 분류법을 아주 싫어하는데 왜 인고 하니;

미국 대학의 일반적 분류법이나 한국의 초기 형태 대학(예를 들어 연희전문학교)들의 예를 보면 이른바 '이학'은 공과대학보다는 인문계에 더 가깝게 분류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를 보면, Department of Physics and Astronomy는 Faculty of Arts and Science에 같이 속해있으며, Faculty는 사실 '교수진'이라는 뜻이지만 저런 경우 '대학'으로 해석하는게 바람직하고, Art의 경우는 미술 혹은 예술을 말하지만 이 경우 인문학을 통칭한다. 보통 Liberal Arts라고 하면, 영문학을 비록한 각종 언어의 문학, 그리고 언어학, 법학, 철학, 심리학을 포함하며, 논리학, 수학, 물리학, 화학정, 생물학정도를 포함하며, 예술 쪽으로는 음악과 순수미술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Liberal Arts에 경제학이 포함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경영학이 포함되는 경우는 없으며, 의학도 보통 따로 분류된다. 다른 모든 공학과 산업디자인 등의 applied arts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Liberal Arts and Science라는 것은 'Job market에서 인기가 없는 과들의 모임'정도가 되겠다.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혹은 더 좋은 돈벌이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주 전통적인 '학문'이라는 개념에 더 충실한 학과들이 Libaral Arts에 포함이 된다. 그런 면에서 사실 과학와 인문학, 예술은 아주 많은 유사성을 가진 면이 있다. 뭐랄까. 제일 먼저 어떠한 주제를 잡을 때 '그래서 그걸로 뭘 할수 있는데?'라는 질문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나름의 스타일'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하도 inter-disciplinary가 대세이다보니, 사실 한 과 안에서도 많은 스펙트럼이 있기 마련이다. 일단 물리과 안에서도 세부전공이 여러개로 나뉘는데, 그 중에 고체 실험은 어느정도 이공계로 분류되도 억울하지 않을 수 있다. 고체 실험은 정말로 'highly industrized'된 분야로서, 모든 연구가 아주 체계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 물질을 만들고, 누군가 측정하고, 공대와 다르게 새로운 물질에 대한 시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팀 작업이 매우 중요하고 틀에서 벗어날 여지가 별로 없다는 면에서 전통적 물리학과는 좀 달라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랩은 nonlinear dynamics lab인데, 이 분야가 얼마나 덜덜덜인 분야냐면, 내가 보는 논문은 1890년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문의 발전은 아주 더디어서 아직도 1941년 Kolmogorov라는 걸출한 인물이 이루어낸 것을 되짚어보면서도 할 일이 많이 있다. 순수한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의 성질을 다루는 스터디가 그룹미팅 주제로 종종 발표되는 것을 보면 일단 우리 분야도 'hard core physics'라고 해도 될 법 하다.

오늘 교수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언제나 하시는 이야기지만, 나름의 'own style'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셨다. 연구를 하는 방식, 실험을 설계하는 방식, 논문을 쓰는 방식 모두에서 과학자는 나름의 '스타일'을 가져야한다는 말씀이었다. 이 분은 내가 바이올린을 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음악을 잘 예로 드는데, 여러 음악가가 연주를 할 때 각자 다른 스타일이 있고, 듣는 사람이 어떤게 좋은 음악인지 알 수 있듯이, 과학하는 방법에도 그러한 스타일이 있으며, 그런 스타일은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몇달 전에 돌아가신 1991년 노벨상 수상자 de Gennes의 예를 들었는데, 이 분은 항상 논문을 쓸 때 간결하게 썼다고 한다. He didn't put much explanation...이라는 표현으로... 마치 피카소가 any addtional stroke을 redundant라고 생각했듯이 de Gennes도 정말 '필요한 설명'을 제외하고는 논문에 더 글자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 그의 논문을 읽을 때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불만스럽지만, 나중에는 그게 그의 철학이고 물리하는 방식임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예전에 과학고 시절이나, 이른바 '영재교육'을 받으면서 창의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타긴 했는데 (물론 그렇다고 그런 영재교육이 얼마나 창의성을 계발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혹은 창의력이 계발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실 대학을 거치고 대학원을 거치면서 물리를 하면서 더 중요한 것은 '이해력'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동안 과학자와 예술가의 공통점을 엄밀한 의미에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과학을 함에 있어서 아인슈타인처럼 '특허청 책상에 앉아서' 위대한 이론을 사고실험을 통해 발견해낼 바가 아니라면 창의력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연구라는 작업은 대부분 디스커션을 통해 이루어지고, 사실상 팀작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는 문제의 본질이 뭔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연구방법을 찾아서 올바른 파라미터를 적용해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는 거다.

여전히 내 생각은 유효하다. 혼자서 번뜩이는 천재보다는 꾸준히 이야기하고 디스커션 하는 학자가 더 훌륭한 학자고, 전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서 그게 맞을 확률보다는 이론과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여 차근차근 접근하는 방식으로 연구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 악보를 보면서 바이올린을 했지만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감정을 악기로 표현할 수 없었듯이, 연구에 있어서 나의 방식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면에서 예술과와 과학자 사이의 아무 연관성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과학자는 정확한 것을 추구하고 예술가는 감성적이라는 식의 접근은 아마도 과학자가 '공학자'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주변에 존경받는 교수님들을 보면 그분들은 어떤 이론을 들었을때 차근차근 계산해보기 앞서 자신들의 직관에 의지했던 거 같다. 아무래도 물리를 하는 사람들은 공학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정도 맞는 거 같다. 연구할 때 보면 처음부터 모든 step를 차근차근 밟기보다, 먼저 dimensional analysis만 해봄으로서도 많은 문제를 비교적 정답에 가까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페르미가 원자폭탄의 실험에서 발생한 버섯구름만 보고서 그 원자폭탄의 에너지 스케일을 단번에 알아맞춘 일도 있지 않은가.

피아노 전공인 Joshua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음악에 대해 식견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는 나처럼 악보를 자세히 읽지 않는다. 다만 악보에 쓰여진 리듬의 구조와 멜로디의 주고 받는 구조만을 보고 Clara Schumann이 쓴 악보에서 Brahms와 R. Schumann의 자취를 읽어내는 것을 보고 참 인상적이었다.

글을 여기서 마무리짓긴 하지만 사실 난 아직도 내가 바이올린으로 내 정서를 표현하는 것과 논문으로 내가 보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큰 유사성을 찾아내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교수님과의 짧은 대화가 그러한 느낌이 어렴풋이 무엇일지 clue를 잡은 느낌이다. 지금 이렇게 내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래도 공유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듯이 내가 완전히 풀지 못했지만 알리고 싶은 물리문제에 대해 논문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날이 오길 바란다.

IK

P.S. 교수님과의 대화는 결국 내년 3월 APS에 abstract를 두개를 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난 둘중에 뭐 낼까 하고 물어보러 간건데; -_- 열흘 내로 주제 두개 정리해서 abstract써야한다. 뭐 열흘이면 그렇게 빡세진 않다. 그리고 이 두개 포함, 지난 1년간 집중헀던 문제 세개를 크리스마스 근방까지 논문으로 정리하잖다. 두개는 대충 했으니 하나만 좀 쓰면 되려나.

Thursday, November 15, 2007

괴델과 콰인

철학에서 수백, 수천년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모든 주제가 나한테 흥미롭지는 않았다. 주로 난 1900년 이후의 경험주의자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었지만 경험주의자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몇 있다. 예를 들면 괴델과 콰인인데,

일단 괴델의 생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incompleteness'인데, 내용인 즉 '공리로부터 출발한 논리적 이론에는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있는 명제가 존제한다', 혹은 '어떤 이론이 공리로부터 출발했다면 그 이론이 완전한지 증명할 수 없다' 정도 될 거 같다. 버틀런트 러셀이 수리논리학을 정립한 이후로 논리학이라 함은 거의 수학과 동일한 학문으로 취급되는데, 이를테면 수학의 경우, 우리가 수학의 체계로 증명할 수 없는 몇가지의 공리를 가지고 있다. 괴델도 사실 이 공리들이 참임을 증명하려 했다가 불완전성 정리를 내놨지만. 하여간 그 공리들이라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해가 쉬운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들을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평면 위에서 두 점은 한 선분을 결정한다.
2. 선분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3. 한 점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한 점을 지나는 원은 존재한다.
4. 모든 직각은 같다.

사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는 하나가 더 있는데 다른 네개보다 복잡하니 생략했고. 이 네개의 공리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옳을 거 같지만 사실 증명되지 않았다. 유클리드는 이 네가지의 공리로 출발해서 28개의 theorem을 만들었다고 한다.(출처 까먹음) 우리가 참이라고 믿고 있는 수학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사실은 아무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는 '가정' 몇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참 불안한 일이다. 사실 저 네개의 가정은 아주 큰 돌덩이라서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저러한 가정을 부정하여 만들어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까지가 괴델에 대한 이야기고, 콰인은 경험주의자들의 착각에 대해 지적을 했는데, 그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다. 콰인이 말하는 '번역'이라는 것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거나 하는 저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고(콰인이 든 예중에는 그것도 있었지만), 각각의 사람이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 정확한 소통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아무래도 언어에 내재된 본질적 불명확성을 지적했겠지만, 콰인이 말하려 했던 것은 그런 것보다는 본질적 경험주의의 한계였던 거 같다. 관념의 범위가 언어의 범위보다 크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고. 이를테면 어떤 언어의 해석이 관념의 영향을 받는다는 그런 이야기다. 영어와 원시종족언어 사이에의 번역 불가능성으로 시작해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식으로까지 확장된다.

사실 오늘 내가 쓰려고 했던 것은, 이런거와는 또 다른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관련이 없지는 않지 싶어서 서론을 좀 길게 썼다. 이를테면 '색맹의 파라독스'같은 문제인데, 만약 어떤 사람이 파란색을 붉게 보고, 붉은 색을 파랗게 본다면, 그가 색맹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내가 어떤 색을 보고 저게 '붉은거다'라고 배운 이후에 그 색을 가르키면서 '붉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할 때, 그도 자연히 그가 '붉다'고 배웠기 때문에 '붉다'고 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와 내가 동일하게 인식한다는 것에 대한 보장이 없지 않느냐는 거다. 이런 문제는 어떤 관찰결과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대상에 대한 본질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과 그 관념을 정의해준 과정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인식론에 보다 가까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르지만 또 비슷한 이야기로 '사악한 과학자의 역설'도 있다.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밤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뇌를 빼서 배양액 속에 넣은 후 전기 자극을 주는 것과 우리 실제 세계와 어떻게 구별이 가능할까? 마치 매트릭스와 비슷한 설정의 이 역설은 사실 답이 없다. 아직 풀리지 않은 역설이기도 하다. 예전에 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우리의 현실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학적 공리체계가 불완전한 것 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의 체계 역시 상당히 불완전하다는 것이고, 그 관념 체계에 지극히 영향을 받는 우리의 이른바 오감과 관찰의 입장마저도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컴퓨터에 타이핑을 하고 있지만,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이 blogger.com의 화면인지, 내가 지금 내가 맘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전달이 되게끔 쓰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 시시껄렁하게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그 바닥에서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의 존재 자체도 신앙의 영역에 들어간다. 나는 정말 내가 존재하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데카르트는 사유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찾았던 모양인데, 나는 내 안에서 진정 새로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존재의 근거를 찾기도 쉽지 않다.

물론, 일상 생활에서 내가 자아를 잃어버린 듯한 광기를 보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어떤 형태로간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느낌, 그리고 스스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그런 것들에 너무 확신을 가지기에는 불완전한 요소가 너무 많다.

IK

Wednesday, November 14, 2007

Ivry Gitlis


Ivry Gitlis, 1922-

한국에서 93.1 KBS1 라디오 채널을 자주 듣곤 했는데, 쉽게 말해 그냥 클래식 채널이다. 아마 2004년 봄 어느날이었던 거 같은데, 차를 타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신촌 우리집과 당시 내가 다니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는 사실 차로 가기에 민망한 거리였다. (걸어서 15분정도) 하여간 그렇게 자원을 과소비;;;하면서 학교를 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차이콥스키를 사실 대단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른바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 하나인 차이콥스키의 D장조 협주곡은 자주 들어 알고 있었다. 하이페츠와 오이스트라흐의 명연주 뿐 아니라 꽤 많은 사람의 연주를 듣고 있었는데 그날 라디오에서 나온 음악은 내가 이전에 들어본 음악이 아니었고, 게다가 좋기까지 했다. 이게 내가 Ivry Gitlis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알게 된 계기이다. 그리고 이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차이콥스키 협주곡에 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가 됐다. 사실 오늘 기틀리스에 대해 쓰는건 '그냥'이다. 그냥 이 사람이 연주한 파가니니 협주곡 2번을 듣다가, 내가 이전에 이 사람에 대해 쓴 적이 없는거 같아서.

이 사람은 일단 하이페츠나 밀스타인 같은 precision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오이스트라흐 같은 bowing magician은 아니지만, 음악을 읽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생산해내는데 상당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precision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거 같은 느낌이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다지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메트르놈처럼 박자가 잘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인토네이션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 down bow에서 거친 마찰음도 들리고, 종종 거친 쇳소리도 들린다(이런 테크닉 상의 험담은 '하이페츠나 밀스타인과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람 음악이 듣기 좋은 이유는 감정이 상당히 솔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연주 스타일 상의 특징이라면, 악보에 그려진 화음을 아르페지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전혀 화음이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힘이 실린다는 거고, 에네스쿠의 제자 답게 비브라토가 매우 깊고 느리며, 그리고 보잉이 매우 빠르고, 때로는 허스키하거나 째지는 듯한 고음이 난다(Stradivarius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own bow에서 상당히 힘이 실리며 up bow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솜씨가 특출나다. 게다가 종종 나오는 슬라이딩은 예전에 어떤 다큐멘타리에서 이작 펄만이 지적했듯이 잘못 사용하면 정말 'old-fashioned'로 들리는 기법인데, 이 사람의 슬라이딩은 자주 나오지 않지만 여러개의 stirng을 넘나드는 슬라이딩이 종종 나와서 오히려 비르투우소의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연주 중간에 종종 숨을 고르는 듯하게 쉼표가 강조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게 어떤 의도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 뭔가 느낄 숨통을 열어준다고나 할까.

밀스타인이나 하이페츠와 같은 동시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concert violinist로서 연주를 하는 것에 대해 의무감을 가지며 성실했던 것과 달리, 기틀리스는 상당히 기분파였다고 한다. 약속을 안지키거나 해는 글렌 굴드 식의 기행담의 주인공이 되진 않았지만, 커리어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스스로 즐기고 다른 음악가와 나누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오히려 콘서트나 음반 발매에서 유명해지진 않았다고 하고, 이 사람의 재능에 비해 너무나 명성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야인에 머물던 천재'식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 사람 연주를 실제로 들어보면 속박됨 없이 자유로운 정신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내가 이 사람 연주를 좋아한다. 그런 만큼 이 사람이 바흐나 베토벤을 연주하는 모습을 잘 상상하기 어렵고, 차이콥스키나 파가니니 등의 연주가 특히 좋은 거 같다. 특히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은 상당히 과장된 리듬감과 그 만의 독특한 음색이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파가니니적인 '바이올린다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봐야할 음반 중 하나.

IK

Saturday, November 10, 2007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11/10/07

Johannes Brahms, Hungraian Dance No. 17, 18, 19, 21 (arr. orch. A. Dvorak)
Ludwig van Beethoven, Concerto No. 4 in G major for Piano and Orchestra, Op. 58
Johannes Brahms, Symphony No. 4 in E minor, Op. 98
Nikolai Lugansky, Piano
Marek Janowski, Conductor

지난 주 브람스 3번 공연에 이은 4번 공연이었다.

일단 지난주에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를 브람스 자신이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을 한 1, 3, 10번과 더불어 드보르작이 오케스트레이션을 한 17~21번 중 20번을 연주했었는데 오늘은 나머지 17, 18, 19, 21번을 연주했다.

일단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드보르작의 편곡은 약간 핀트가 안맞는다는 느낌이었다. 18번을 제외하고는 현과 관이 멜로디를 주고 받는 관계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고, 공통적으로 마지막 노트가 너무 웅장하고 장엄했다. 18번에서는 주제를 피콜로-클라리넷-트럼본-현의 순서로 주고 받는데 그건 참 괜찮았다. 19번의 경우는 피콜로가 주 멜로디를 맡았고 거의 독점하다 시피 했는데, 이 곡 자체가 원래 높은 음에서 기교적으로 움직인다는 면에서 피콜로가 상당히 어울리는 악기인 거 같긴 한데 전체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서 피콜로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모습은 뭔가 어색했다. 용의 몸에 뱀 머리가 달린 느낌이랄까.

베토벤의 G Major 피아노 협주곡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중에 하나다. 음악적으로 꽤 많이 통하는 친구가 CD를 선물줬는데 그렇게 처음 알게 된 곡인고, 음악사학자들은 베토벤 1,2번을 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많은 초기작품, 그리고 4,5번을 전형적인 베토벤적인 작품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오케스트라가 상당히 강조된 작품으로 잡는다. 그만큼, 1,2번만큼의 세세한 기교는 없지만 4,5번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고 오케스트라와의 조화가 중요한 곡이라고 생각이 된다. 연주를 한 Lugansky는 니콜라예바의 제자라는데, 난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고, 라흐마니노프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결론적으로 연주가 별로 맘에 안들었다. 일단 전반적으로 실수 없이 무난한 연주였긴 했다. 하지만 베토벤 특유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오케스트라에 많이 섞여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이 연주자가 멜로디를 잘 타긴 한다. 아마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는 잘 할거 같다. 하지만 일단 다이나믹이 부족하고, 리듬을 강조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특히 3악장 같은 경우는 Rondo Vivace인데 rondo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는게 매우 중요할진대, 그보다는 혼자 일방적으로 멜로디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곡에 대해서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같이 가신 분은 다른 견해를 내놓으셨다. 나하고 같이 University Orchestra하시는 분인데, SNUPO 출신이시고, 하여간 이 분도 비올라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인데, 이분께서는 오히려 '베토벤의 어렵고 복잡한 스케일을 듣는 사람이 아주 듣기 쉽게 부드럽게 연주했다'고 좋게 평가하셨다. 결국 음악을 '편하게' 들은 건 같은 데, 나는 좀 더 긴장감 있는 연주를 원했던 거 같다. 아, 게다가 카덴차가 누구껀지 몰라도 너무 주제랑 동떨어져있었고, 상당히 부드러운 연주를 했던 솔로이스트에 반해 오케스트라, 특히 그 중에 현은, 데타셰를 강조하는 보잉이라서 약간 미스매치가 있기도 했다.

브람스 4번. 일단 처음 들어가는 B-G의 완전 3도 내름음형의 레가토가 정말 들어줄 만 했다. 곧이어 나오는 현의 스타카토도 상당히 파워풀 했는데, 1943년 베를린필의 연주만큼 파워풀하진 않은 거 같긴 했다(비교대상이...). 곧이어 나오는 첼로 멜로디도 아주 fulfilling한 연주였다. 처음엔 아주 '파워풀한 레가토'였는데 1악장 중후반부로 가서 전반보다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볼륨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1악장을 마무리짓는 팀파니도 괜찮긴 했지만 기대만치 웅장하진 않았다. 2악장의 경우는 호른이 시작을 하는데 아주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곧 자리 잡고 플룻과 클라리넷으로 멜로디를 넘기는데 목관이 전반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2악장도 무리없이 잘 들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 다시 파워풀해졌는데, 사실 스케르초 악장이라 그렇게 파워풀할 필요는 없어보이긴 했다. 하지만 듣기 거북할 정도는 아니었고, 나름 대비가 큰 다이나믹에다가 리드믹한 연주였다. 볼륨이 약간 큰 듯 한 거 말고는 아주 훌륭한 스케르초였다. 4악장. 4악장도 아주 괜찮았다.

내 생각에 브람스 4번의 4악장의 가장 큰 묘미는 마치 고무줄을 당겼다가 한 순간에 놓듯이, 무언가 열심히 끌어올리다가 순간에 놓쳐버리는, 그런 감정인데, 이게 사실 표현하기 어려운 거다. 비교적 긴 박자를 연주하고 곧이어 비교적 짧은 박자가 나오는 음형이 여러번 나오는데 (이를테면 E-A 음형), 이 경우 첫 음표는 포르테에 비교적 길게 끄는 소스테누토이어야 하지만 두번째 음표는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테누토이어서 안되지만 스타카토이어서도 안되고, 포르테이어서도 안되지만 피아노보다는 커야 한다. 내가 원하는 브람스는 그런 것을 통해 끊임없는 도전과 끊임없는 좌절을 표현하며 그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관계가 조성이 되는 음악이다. 뭐랄까, 도전의 시간은 길지만 좌절은 순식간이며, 마치 몇시간동안 실험 세팅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스위치를 잘못 눌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거나. 그러한 과정 후에 결국 뭔가에 성공하지만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않고 새로운 도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사실 브람스와 같은 음악에 이렇게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는 것은 이상하긴 하지만. 하여간 내가 받아들이는 음악은 이렇다.

오늘 연주에서 이런 면이 참 잘 살려줬다. 특히 앞서 언급한 E-A, E-B 같은 음형이랑, 그 변형인 E-EDE, E-F#EF# 같은 음형에서의 당김과 놓음이 아주 적절했다. 딱히 흠잡을만한 부분이 없고,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4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더 몰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거의 마지막 1분만을 남기고 E~ F#~ G~ A~ B~ 의 느린 상향 스케일 나오고 나오고 말인데, 그 부분에서 조금 더 몰아쳐주면 앞서 차분한 부분과 좀 더 큰 대비개 되지 않았을까 한다. 마치 푸르트뱅글러의 연주처럼 말이다.

IK

Friday, November 09, 2007

아파트 세탁기의 미스테리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각 개별 호실에서는 세탁기를 쓰지 못하고, 세탁기가 필요하면 지하에 있는 세탁실을 이용해야 한다.

하여간 오늘 세탁을 하러 내려가서 세탁을 하고 왔다. 보통 미국인들이 세탁된 세탁물을 건조시키기 위해 건조기를 많이 사용하지만, 자연건조를 좋아하는 나는 그냥 서둘러 세탁물을 챙겨 방으로 올라왔다. 여기서부터 미스테리는 시작되는데, 세탁물더미에 내 것이 아닌 물건이 하나 섞여있었다. 이름하여...

'여자팬티'

-_-;;;

카이스트 때도 보면 자신의 세탁물이 일부 없어지거나 하는 일은 종종 생겨도 멀쩡한 세탁기에서 없던 것이 생기는 일은 드물지 않나? 하여간 잘 들여다(!)보니 '호칭 FREE'라고 써있다. 한국 여성분의 그것...인 듯 하다. 이것이 어떻게 내 세탁물 사이로 들어왔을꼬... 세탁기 내부 공간이 질량보존법칙과 열역학 제2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13.141592차원의 스트링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제외하고는(제외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theory가 있다.

1. 어떤 여성분이 급히 팬티만 빨 일이 있어서 내 세탁기에 무임승차하려 했다.
2. 어떤 여성분이 날 사모한 나머지 본인의 속옷을 내 세탁기에 넣었다.
3. 어떤 여성분이 날 사모한 나머지 우리집에 잠입했었다.
4. 우리집에 내가 모르는 내 (우렁)각시가 있다.
5. 내가 원래 변태라서 내가 입는 모든 속옷은 여성용이다.
6. 내 전에 세탁을 하던 분이 모르고 놓고 간 것을 내가 확인 안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7. 기타 등등...

하여간, 진실은 저 너머에......

P.S. 내 주변에서 최근 팬티를 잃어버리신 분은 연락을... 쿨럭;;
P.P.S. 도대체 이런 글은 어떤 라벨을 붙여야 하는 거지;;;

IK

Wednesday, November 07, 2007

Luke Ravenstahl, the Mayor of the City of Pittsburgh

오늘 아주 재미난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잘 모르는 일이지만 기록에 남겨야겠다.

작년 9월에, 피츠버그의 시장이 죽었다. 당시 시장인 Bob O'Connor가 취임한지 9개월만에 죽었는데, 사실 말이 9개월이지, 시장 자리가 실질적 공석이 된 것은 죽기보다 전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시장직에 있었던 기간은 아주 짧았다. 위키에도 나오지만 시장에 2006년 1월에 취임했고, 7월에 뇌종양 진단을 받는다(O'Connor was diagnosed with primary central nervous system lymphoma, a rare brain cancer). 위키에는 tumar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데, 내가 의학 전문 용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 말하라 수 없지만, 당시 신문에 시장 O'Connor가 Tumor로 사망했다..라는 기사가 있었고, 위키 내용과 연관시키자면 림프종에 생긴 뇌종양으로 사망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여간 7월에 진단을 받았으니 고작 7개월, 만 6개월을 시장 자리에 있었고, 진단된지 두달만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사람 인생도 참 허무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이 고작 6개월만 시장에 재임하고도 피츠버거의 마음 속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인데, 사실 나는 현지인이 아니라서 잘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미국인 특유의 영웅 만들기 기질도 있는 거 같다.

하여간 역사적으로 보자면 피츠버그는 50~70년대 아주 잘나가던 철강공업도시였고, (50년대쯤에는 인구로 세계 5대 도시였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70년대 철강산업이 일본과 한국으로 이동해가면서 급속한 인구 저하와 산업붕괴를 경험하게 된다. 아직도 피츠버그는 심각한 노령화에 시달리고 있고, 하다못해 최근에 내가 본 뉴스 중에는 '드디어 인구 감소세가 양화되기 시작했다.'라는 것도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인구를 P라고 하면 여전히 dP/dt<0이지만, d/dt(dP/dt)>0이 되었다는 말이다. 뭐 사실 이런게 '변곡점'을 지났다는 면에서 희망적인 기사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구는 감소한다'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피츠버그의 자조적인 현실이 섞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전체 피츠버그의 인구가 감소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확실히 downtown지격의 인구는 지난 30년간 거의 반 이하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를 Metropolitan Area로 보느냐가 또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미국내 철강산업과 전통적 굴뚝산업의 쇠퇴와 더불어 피츠버그의 세수 역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시장들이 항상 들고 나오는 것이 '더 젊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최근에 그러한 쪽으로의 투자가 University of Pittsburgh의 바이오 산업이라던가, Carnegie Mellon University의 Robotics쪽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병자'와 '학생'의 도시가 되다 보니 세수 측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인 거 같다. 펜실배니아 주와 마찬가지로 피츠버그에서는 학생에게 세금을 떼지 않는다. TA나 RA를 통해 받은 돈은 연방세금은 내지만 state tax와 city tax는 내지 않고, 우리학교의 경우 TA는 일단 withholding을 했다가 나중에 return이 되지만, RA의 경우는 아예 withholding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학생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 제도가 학교가 학생에게 지불하는 인건비를 낮춰서 연구비 책정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더 많은 연구비를 받아올 수 있는 곳에 영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피츠버그가 돈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인데, 그러면 세수가 부족한 시장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1) 세금을 늘리거나, 2) 지출을 줄일 수 있다.

Bob O'Connor도 많은 사람들한테 약속했던 것이 '피츠버그를 젊고 깨끗하게'였고, 많은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은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가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었고, 할 기회가 주어졌어도 계획을 완수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하여간 O'Connor가 죽고 나서 시장직 승계가 이루어졌는데, 그때 시장직을 승계받은 것이 Luke Ravenstahl이다. 이 사람은 1980년생이고, 사실 내가 피츠버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무도 시장이 죽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승계 순위 노트에 상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여간 26세로 피츠버그 역사상 최연소 시장이자, 미국 역사상 'the youngest major city mayor'가 된다.

그리고 나서 1년이 흐르고 Mayor 선거가 있게 됐는데, 처음엔 Luke Ravenstahl이 민주당 Primary에 통과할지조차도 화제거리였고, 막상 민주당 후보로 지명이 되고 나서는 모든 신문이 등을 돌렸다. 피츠버그 지역의 2대 신문인 'Pittsburgh Post-Gazzette'과 'Pittsburgh Tribue Review' 모두 공식적으로 공화당의 DeSantis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유인 즉, 1) 도시를 젊게 만드는 데는 젊다는 것은 상관이 없고, 2) O'Connor의 정책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했으며, 3) 자질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면서 '도시를 경영하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같다'며 기업가 출신이자 피츠버그에 있는 Carnegie Mellon Unviersity의 교수직을 가지고 있는 DeSantis 후보를 지지했다. 아마 자질 문제는 작년엔가 한번 Ravenstahl이 생각없이 기업을 하는 친구의 자가용 비행기를 함께 탄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두고 한 말인 거 같다. 그리고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앞서 말했다 시피 세수가 부족하면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높여야 하는데 현재 Ravenstahl이 추진하는 '주세'(酒稅)와 버스를 담당하는 PATransit의 예산 삭감 문제는 상당한 저항에 직면해있다.

뭐, 하여간, 양대 신문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Ravenstahl은 64:35의 득표율로 압도적으로 피츠버그 제 58대 시장직을 유지해나갈 수 있게 됐고, 이로서 피츠버그는 지난 70년동안 민주당 출신만이 시장을 역임,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남게 됐다.

사실 이런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두기에는 내가 너무 현지화가 덜 됐고, 사실 그동안 지역 신문들이 마치 '조중동 노무현 까듯이' Ravenstahl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아주 surprising한 것은 사실이다. 26세에 미국 20대 Metropolitan area를 아우르는 시장에 취임했을 때는 이 사람 앞으로 잘 하면 상원의원도 하겠구나 했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선출된 것이 아니라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1년후 27세로 선출직으로 시장에 당선됐다는 사실은 이 사람이 앞으로 정치 커리어 트랙을 밟는데 정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모르지. 40세 이전에 상원의원 되고 50 근방에 대통령 될지.

IK

Tuesday, November 06, 2007

악의적인 운명

오늘 비속에서 차 안에서 잠시 라디오를 들었는데, 아주 익숙한 음악이 나왔다. 뭔가, '주말의 명화' 프로에서 '벤 허' 틀어줄 때 배경으로 나올만한 음악인데, 찾아보니 유투브에 있어서 링크한다.(편의를 위해 가사 부분에...) 맨 마지막 노트가 좀 짤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만 한 멜로디다. 하여간 라디오가 끝나고 무슨 곡이었는지 잘 들어보니 Carl Orff의 '카미나 바라나' 라고 들어서 일단 Camina Barana라고 메모를 하고 cd를 찾아봤더니 정확한 스펠링은 Carmina Burana였다. 그리고 그 중에 내가 들은 곡은 첫번째 곡 'O Fortuna'였다. 그래서 가장 쌌던 안탈 도라티(Royal Philharmonic Orchestra)의 음반을 사고 음악을 들으면서 라틴어 가사를 찾아봤다. (저가 음반이라 해설이 없더라고 -_-)

참고자료: 위키

저 동영상에도 가사는 같이 나오지만, 여기에도 옮기자면,

O Fortuna, velut luna statu variabilis
semper crescis aut decrescis vita detestabilis
nunc obdurat et tunc curat ludo mentis aciem
egestatem potestatem dissolvit ut glaciem

Sors immanis et inanis, rota tu volubilis
status malus, vana salus semper dissolubilis,
obumbrata et velata michi quoque niteris;
nunc per ludum dorsum nudum fero tui sceleris.

Sors salutis, et virtutis michi nunc contraria
est affectus et deffectus semper in angaria.
Hac in hora sine mora cordum pulsum tangite
quod per sortem sterit fortem
mecum omnes plangite!



각 행의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Like the moon, you are changable,
ever waxing and waning.
Hateful life first oppresses and then soothes, as fancy takes it,
poverty and power, it melts them like ice.

Monstrous and empty, you whirling wheel, you are malevolent,
thus well-being is vain and always fades to nothing.
Shadowed and veiled, you plague me too,
now through the game I bring my bare back to your villainy.

Fate is against me in health, and virtue,
driven on and weighted down, always enslaved.
So at this hour, without delay, pluck the vibrating strings.
Since Fate strikes down the strong man,
everyone weep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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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운명-여기서는 '행운'과도 약간 동의어로 쓰이지만-이 우리에게 항상 친절하지 않긴 하다. 하지만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슬픔'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기쁨'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fate가 malevolent하다는 이야기는 약간 거친 듯도 하다. 사실 monstrous한 것은 우리 욕심이겠고, empty한 것은 우리가 가진 자원이겠고, malevolent한 것은 운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러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의 일부라는 면에서 이 epic의 가사도 상당히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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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는 태그를 붙이고 보니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야할 거 같아서 좀 덧붙이자면, 일단 이 Carmina Burana라는 곡은 기본적으로 칸타타로 분류되긴 하지만 바흐와는 달리 성경과는 상관이 없다. 'O Fortuna' 말고 23개의 칸타타가 더 있으며 주제에 따라 몇개의 그룹으로 나뉘는 듯 하고, 모두 라틴어 가사로 되어있다. 사실 완전히 다 들어본게 아니라 별로 할말은 없고, CD살 때 이거저거 골라서 들어봤는데 각 녹음마다 다른 점이 좀 있다. 일단 처음에 시작을 3/1박자로 시작해서 장엄하게 'O Fortuna, velut luna statu variabilis'를 노래한다. 그리고 나서 3/2박자로 바뀌고 끝까지 가는데, 3/2박자 부분의 박자가 녹음마다 상당히 달랐다. 내가 산 Antal Dorati의 음반의 경우 상당히 빠르다. 이를테면, bar 하나당 박자 하나, 오케스트라에서 하는 얘기로 'in one'이 가능한 박자이고, (in one으로 박자를 치기엔 좀 느린감이 있지만), 예를 들어 상당히 맘에 들었(지만 비쌌)던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필 녹음의 경우 거의 in three로 가는 정도로 아주 장중한 템포였다. 래틀 녹음의 경우 전체를 들어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이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지만, cd한장을 더 산다면 템포의 variation에 대한 고려를 해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

IK

별을 보는 이유

나는 종종 '별'을 보러 나간다. 사실 27살 먹은 남자가 밤에 '별'보러 나간다 하면 상당히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요즘도 별을 보러 나간다. 밤하늘에 나가서 별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실 나는 별을 잘 보는 편은 아니다. 별자리도, 잘 보이는 거밖에 모른다. 대부분 Ecliptic Line에 걸쳐있는 것들만이 주로 내 관심대상이 되는데, 다시 말해서 Zodiac말고는 다른 별자리는 잘 모른다. 아직도 하늘을 보고 있자면 좌표계(Horizontal Coordinate)가 헷갈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Polaris를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데 이거는 Equatorial Coordinate인데 이것도 사실 헷갈린다. Equatorial Mount를 가진 망원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걸 사실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다. 항상 철저하게 지상에서부터 나침반으로 방향을 맞추고 각도계로 정확히 맞추기보다 그냥 대충 보이는 대로 망원경을 조준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한다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어설프게 한다는게 참 부끄럽긴 하다. 하여간 하늘에서 별을 찾는 기본적인 '지리'에 해당하는 별자리도 잘 모르고, 게다가 천구의 위도 경도도 잘 매치를 못시키고, 게다가 눈이 좋은 편도 아니고, 게다가 사진에 대해 경험이 많거나 괜찮은 장비를 가진 것도 아니다. 내가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척 하긴 하지만 사실 그 방면으로는 그야말로 '안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어떤 물질이 빛을 낸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빛을 낸다는 것을 우리가 가진 물리학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전자기파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말은 간단하다. 하지만 빛이라는 것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대개의 경우 열에너지의 형태로도 많이 소모된다. 밤하늘에 보이는 작은 밝은 점 하나는, 수십~수백, 혹은 수만 광년에 떨어진 곳에서 어떤 일로 발생된 전자기파가 이 넓은 공간을 헤치고 헤쳐서 수십, 수백, 수만년 후에 드디어 내 눈에 도달한다. 이거 자체로 정말 신기하지 않나?

조금 시야를 좁혀서 우리 태양계만을 바라본다 쳐도, 어제는 화성을 봤다. 붉그스름한 작은 원반형의 물체가 망원경에 보인다. 우리가 화성을 본다는 것은 태양에서 나온 빛이 화성이라는 돌덩이에 반사되서 온다는 거다. 다른 행성들을 제외하고서라도, 화성만 보면 우리 태양계의 세개의 개체가 나온다. 화성은 왜 지구로 안떨어질까? 그냥 우주 공간에 떠있는걸까? 막 샤워를 마친 샤워기 앞에서 밝은 전등을 켜보면 수증기에 빛이 반사되서 보인다. 뿌연 빛이 보인다. 태양이 화성이 있는 쪽을 밝게 비춰서 화성에 빛이 반사되서 내 눈으로 온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뭐라 더 말을 해야할 지 못할 정도로 경외감을 느낀다.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그런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죽지 않아서 살아간다는 말에 진정으로 동감한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에는 변화가 없고 사실 태양이 폭발해 없어져도 그저 별 의미없는 변화일거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는 이 시점에서 나 스스로의 마음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사실 죽지 않아 사는 입장에 살기 귀찮다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상사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마당에, 내 마음의 행복이 중요하다면 그저 매 순간 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큰 인생의 흐름이라 생각하는 거다.

최근에 아는 후배가, 인생을 diffusion에 비유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이 마치 이리저리 맘대로 움직이는 거 같지만 결국엔 어디론가 흘러가는 방향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내 생각에 diffusion과 인생살이의 가장 다른 점은 인생은 markov process(process with memory)가 아니라는 점이다. 브라우니안 모션을 하는 입자야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지 않지만, 우리는 제한적이지만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살다가 어떤 기쁨을 맛본다면, 과거의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K

"Passions are not natural to mankind; they are always exceptions or excrescences. The ideal, genuine man is calm in joy and calm in pain and sorrow. Passions must quickly pass or else they must be driven out."
- Johannes Brahms, on the letter to Clara Schumann -

Sunday, November 04, 2007

Comet 17P/Holmes

최근데 원인을 알 수 없는 Outburst가 일어나서 겉보기등급이 무려 17등급에서 2등급으로 15단계가 뛰어올라서 화제가 되는 혜성이다. 겉보기등급은 5등급 차이가 100개의 밝기 차이를 가지도록 로그 스케일로 정의되니까 15단계면 10^6배 밝아진 셈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17P/Holmes에 관한 위키피디아 사이트

하여간 이 혜성은 대충 지름이 4km정도의 아주 작은, 천문학적 관점으로 볼때 그냥 '돌덩이'인데 위키를 읽어보면 1892년 Edwin Holmes에 의해 발견됐는데 그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ourburst로 겉보기등급이 4정도로 높아졌었다고 한다. (겉보기등급 3.4정도의 안드로메다와 같이 나온 사진이 있다. 하여간 어제 사진이나 찍어볼까 하고 망원경 들어매고 밖에 나가서 한참 삽질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가진 CCD 감도가 안좋아서 잘 안나와서 포기했다. 아니 감도라기보다 그냥 CCD가 너무 작아서 집광력이 너무 안좋은 거 같다. 업그레이드를 하던가 해야지.

대신 삼각대에 디지털 카메라 올려놓고 몇장 찍었다. 감도 50으로 놓고 F/2.8정도에서 15초 노출 정도 하면 노이즈도 너무 많이 않고, 적당히 맨눈보다 '조금' 더 잘보이는 정도로 찍힌다. 대충 겉보기등급 5 정도는 잘 안잡히는 거 같다. 하지만 대충 4등급 정도는 대충 잘 볼만하게 나온다. 사진 첨부한다.

1:14AM EDT, 4th November, 2007, at Schenley Park, Pittsburgh, PA
Canon S60, Manual Mode, ISO 50, F/3.2, Exposure 15 seconds

클릭 하면 더 큰 사진을 볼 수 있음.
흠, 사진을 올릴 때 얘가 알아서 1600*1200으로 조절하는거 같다.
여기를 누르면 원본 사이즈로 큰 사진을...



IK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11/04/07

Johannes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us 90
Franz Joseph Haydn, Concerto No. 2 in D Major for Cello and Orchestra,
Johannes Brahms, Hungarian Dances, No. 20, No. 10, NO. 7, No. 3
Alisa Weilerstein, Violoncello
Marek Janowski, Conductor

Janowski의 연주를 접한 것은 역시 지난 시즌에 PSO와 함께 브람스 1,2번을 연주했을 때가 가장 최근이고, 그 전해에도 이 사람 연주를 들었었다. 상당히 음악이 깔끔하고 전반적으로 해석이 앤드류 데이비스의 감정 없는 연주와는 달리 감정이 상당히 담기면서도 절제를 잃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푸르트뱅글러는 절대 아니지만 카라얀같은 인위적인 사운드는 더더욱 아니었고, 오히려 오토 클렘펠러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작년 브람스 1,2번의 경우는 음반을 내기 위해 녹음을 했고 이미 음반이 출시가 되었다. 이번 연주 같은 경우도 다음주의 4번 연주와 더불어 브람스 사이클을 완성하기 위한 연주였다. 아무래도 실황녹음을 가정한 만큼 연습량도 적지 않았으리라고 예상해본다.

며칠전에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듣는데 익숙한 멜로디가 나왔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이었는데 내가 듣기 시작한것은 1악장 중간이었다. 그러다가 2악장에서 갑자기 아주 로맨틱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3악장에서 아주 훌륭한 연주가 들렸다. 마치 번지 점프를 하는 것과 같은, 감정의 변화가 급격하지만 절대 뾰족한 부분이 없이 우아했다. 운전중이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더 들었다. 그리고 결국 곡이 끝나고 진행자가 '지금까지 이번 주말에 PSO와 같이 연주할 Alisa Weinerstein의 연주였다'라는 것이다.

PSO에 와서 연주하는 지휘자들 중에서 가장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내 주는 Janowski와 인상적인 음악을 라디오로 들은 Alisa가 같이 나오는 연주는 상당히 기대되는 연주였다.

오늘 연주는 매우 특이한 점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교향곡이 제일 먼저 연주되었다는 거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여간 교향곡에 이어 협주곡을 연주하고 마무리로 헝가리안 댄스가 연주되었다.

일단 브람스 3번은, 훌륭했다. 역시 Janowski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음반 나오면 당연히 사야지. 모든 악장을 통털어서 딱히 할 코멘트가 없다. 1악장 처음에 금관이 약간 안맞는 거 같았는데 금새 제 자리를 찾았다. 브람스 3번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정말 미스테리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과 같은) F Major에서 어떻게 저런 분위기가 나올까. 1악장과 2악장은 어찌 보면 반복이 많고 뚜렷하게 부각되는 멜로디나 클라이막스가 없어서 전반적으로 베토벤의 F Major교향곡과 비슷한 느낌이다. 1,2악장은 정말 특별히 코멘트할 게 없다. 그냥 좋았다. 특별히 틀린 부분도 없었고 내가 나왔으면 하는 소리가 거의 그대로 나왔다. 3악장은 정말 오늘의 최고였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브람스는 1번 1악장, 2번 2악장, 3번 3악장, 4번 4악장이 특히 좋다. 하여간 3악장 poco allegretto는 C.DEf~ G.FD~(.은 붙점, ~는 긴음) 가 주제인 아주 유명한 악장이다. 저 주제 선율을 관악기들이 돌아가면서 연주하는데, 오보에가 주제를 연주할 때 뒤에서 받쳐주는 클라리넷과 바순 소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클라이맥스는 저 주제 멜로디를 호른이 연주할 때였는데,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호른 소리였다. 4악장 들어서는 바이올린의 음으로 'C5. C5 D5. D5 A6. A6. G5. G5'의 음형이 나오는데, 퍼스트바이올린 활 쓰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되서 안외워졌는데, 주로 활 밑을 쓰기 위한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음악이 나왔는데, 나는 당연히 관들이 동시에 멜로디를 연주할 때를 클라이막스로 생각하고 한번 크게 볼륨을 터뜨려줄 줄 았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Janowski는 클라이막스를 뒤로 잡았었다. 관은 부드럽게 멜로디를 연주하고 그게 끝나고 현이 멜로디를 재현할 때를 클라이막스로 설정했더라. 인상적이었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은, C Major가 1번이고 오늘은 D Major, 2번이 연주되었는데, 사실 곡을 들으면서 내가 D Major 협주곡을 2악장 이후로 들어본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적으로 하이든답지 않게 상당히 테크니컬한 곡이었다. 테크닉의 수준은 거의 엘가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음과 빠른 스케일이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같은 느낌도 났다. 하여간 앞서 말했다시피 드보르작을 잘 연주해서 기대를 하긴 했는데, 사실 드보르작과 하이든의 접근방식은 그렇게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살짝 걱정도 했는데 역시나, 이 연주자는 낭만음악을 해야한 거 같다. 사실 드보르작도 그다지 낭만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하여간 Alisa는 25살 먹은 미국 첼리스트인데, 대부분 여성 연주자들이 그렇듯 파워가 없었다. 파워가 안되니까 그걸 정서적으로 커버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하이든이 요구하는 테크닉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일단 왼손으로 핑거보드를 누르는 힘이 너무 약했다. 그러다보니가 소리가 너무 명확하지 않고 적당히 부드럽게 들리는 점은 있는데, 그렇게 연주하면 음이 분명치 않아진다. 게다가 활의 움직이는 방향, 속도 등에 대해 너무 소리가 많이 바뀐다. 하지만 확실히 음을 부드럽게 만들수 있기 때문에 조용하고 서정적인 곡을 할 때는 사실 나도 많이 쓰는 방법이다. 문제는 하이든이 일반적으로 챔버 음악처럼 연주되긴 하지만 그렇게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는 곡은 아니고, 특히 오케스트라와 부조화였다. 오케스트라는 사각형 틀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원을 쏙 집어넣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가 규모를 많이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솔로이스트가 크게 들리지 않았다. 활을 쓰는 방식에도 좀 문제가 있어보였는데, 아르페지오를 연주할 때 활이 한음한음 모든 줄을 명확히 거쳐가야 아르페지오가 굳건해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이 연주자하고 하이든 D Major는 안어울리는 거 같다.

마지막 헝가리안 댄스는, 내가 좋아하는 곡이긴 하지만 내가 가진 음반이 four-hands 악보로 연주한 것이라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이 곡은 원래 브람스가 four-hands로 작곡한 곡이고, 1,3,10번만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을 했다고 한다. 다른 작곡가들이 나머지 곡들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수 있게 했는데 17~21번은 드보르작이 했고, 이번주와 다음주에 PSO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브람스와 드보르작의 오케스트레이션들이다. 오늘은 드보르작의 20번과, 브람스가 직접 작업한 1,3,10번이 연주되었다. 드보르작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사실 별 특색이 없었다. 사실 너무 음악이 아름다워서 이게 과연 '집시'음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는 주로 현이 멜로디를 맡아서 지나치게 정통 클래식의 분위기가 나버렸다. 1,3,10번은 공통적으로 현보다 관악기가 멜로디를 맡는데, 역시 브람스가 직접 한 것이라 그런지 원래의 랩소디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했다. 드보르작에 비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악기가 피치카토를 많이 했다는 것과, 1번과 3번에서 피콜로가 특히 큰 역할을 했는데, 피콜로의 독특한 모아지지 않는 소리가 분위기에 많이 영향을 미친거 같다.

이로서 오늘 감상문 끝. 역시 Janowski연주는 좋았고, Weinerstein은 어려운거 열심히 연주한거 알겠는데 한음한음 정확히 전달하는 것부터 잘 했으면 좋겠고, 하이 포지션에서 음정도 좀 맞춰주고. 그리고 드보르작,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고 훌륭한 작곡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헝가리안 댄스의 분위기는 브람스만큼 잘 살리진 못한거 같다. 사실 드보르작은 체코 출신으로 지역적으로 브람스보다 헝가리에 더 가깝긴 한데, 그냥 느낌상 이 사람은 신세계 교향곡처럼 부르주아+희망적인+도덕적인 이미지다. 사실 클라라 슈만을 좋아하면서도 죽을때까지 아무말도 못했던 브람스가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 할일없이 집시들 사이를 걸아다니는 것과 어울리긴 하지.

사실 나도 그런 면에서는 브람스 비슷한거 같다. 우유부단한거도 그렇고.

IK

Friday, November 02, 2007

축복받은 체력

나는 정말 건강해보인다.

예전에 J누나와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 얘긴데, 보통 사람이 약골처럼 보이면 대개 약골인데, 건강해 보이는 경우, 실제로 약골인 경우도 있는데, 나는 건강해보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매우 건강하다. 일단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지금까지 몇번 없고. 내 기억에 어렸을때 고열로 한번, 배탈로 한번, 고등학교때 고열로 한번 아팠던거 말고는 크게 기억나게 아팠던 적도 없었고, 게다가 피츠버그에 온 이후로는 그 흔한 감기도 한번도 안걸렸다. 게다가 이는 치과의사한테 교정을 한 적이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치열이 고르고 강하고. 유일한 단점이라면 배에 살이 좀 붙었다든 건데, 사실 이건 남자들이 20대가 넘어가면 조금씩 다 생긴다는 것으로 위안삼고 있고, 친구들에 비해서 심한 편이 아니고 게다가 20대 초반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더 강조-_-하고 싶다. 하여간 신체 모든 면에서 90% 이상의 완벽한 가동률..을 가지고 있다.

뭐 물론 나도 몸에 잔 고장은 가끔 있다. 피곤할 때 눈꺼풀에 경련이 온다거나, (이건 비타민 B가 부족한거라고 그러는 걸 봤다.) 요즘같은 환절기에 소화가 가끔 잘 안된다거나... 아니면 많이 안자면 다음날 코피가 나는 경우가 있다거나. 혹은 피곤할 때 손톱 위 살이 튼다거나....

라고 예전에 사람들한테 말하면 "그건 누구나 그런거야"라는 답이 돌아오긴 하더라.

하여간 가끔 뇌가 일하기 싫어하는거 말고는... 정말 축복받은 체력을 지녔다. 정말 축복받은 것이 뭐냐하면, 앞 문단에서 '피곤하면', '많이 안자면' 이런 단어들의 정의가 다른 사람과 좀 다르다는 거다. 일단 '많이 안잔다'라는 말은 '하루에 4시간을 안잔다는 것'이고, '피곤하면'이라는 말은 '5시간보다 못잔 날이 열흘쯤 된다'라는 것을 뜻한다.

지금 글쓰는 시간이 새벽 3시 14분인데, 사실 4시쯤에 자도 아침 9시에 일어나서 다음날 정상적으로 생활하는게 가능하다. 물론 이걸 한 열흘쯤 하면 피곤하다. 지금 이런 생활이 2주쯤 되는데, 지난 주말에 토요일 하루는 7시간을 자긴 했다. 그래서 아직 열흘 연속으로 한거첨 피곤하진 않다. 뭐, 사실 5시간 이하로 자는건 좀 바쁠때 상황이고 (요즘 좀 일이 많긴 하다.) 평소에는 6시간 정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고,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 6시간을 '절대' 넘지 않는다.

나는 밥도 빨리 먹고 잠도 많이 안자는데 남는 시간 다 공부를 하는건 아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얻은 extra시간은 거의 노는 시간으로 전환되는데, 예전 고등학교때 박정행 선생님도 나보고 "노는거 같은데 하는건 다 한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게 이런 이유일 것이다. 사실 노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머리를 계속 비우고 채우고, 채운걸 저장하고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약간 된장남 스러운 발언이지만 남는 시간에 커피 하나 사들고 낙엽 떨어지는거 감상하고 있으면 뭐랄까. 좀 더 자유스러워지는 느낌이다. 하여간 그러한 refreshment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냥 그게 내 사는 방식이다.

요즘 바빠서 운동도 못하고 살고 있는데 왜인지 오른쪽 어깨가 좀 쑤신다. 잘때 항상 오른팔을 아래로 하고 누워서 그런가? 하여간, 그냥 쓸데없이 몸자랑; 나보다 체력 좋은 사람 많을 거 같긴 하지만.

아 부모님께 감사. :)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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