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Faure, Requiem, Op.48
C. Saint-Saens, Symphony No.3 in C minor, Op.78, "Organ Symphony"
Yan Pascal Tortelier, conductor
오랜만에 PSO공연. 2007-2008 시즌 마지막 공연이었다.
일단 첫 곡 포레 레퀴엠. 사실 나는 이 곡이 처음이다.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레퀴엠 등과 함께 인기 있는 레퀴엠 중 하나이고, 게다가 다른 레퀴엠들과는 형식적으로 많이 다른, 종교적 색채가 적은 레퀴엠으로 많이 이름이 나 있는 곡인데, 이상하게 이 곡을 가까이 들을 기회가 없었다. 최근에도 CD를 살까 하다가 그냥 공연에서 처음 들어보기로 하고 말았다.
하여간 첫 느낌은 예상과는 달리, 아주 조용한 곡이었다는 거다. 낭만음앗 시대에 만들어졌고, 종교적 색채가 적다고 하고, 게다가 오르간에 하프를 두대씩이나 사용하는 편성을 생각하면, 관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곡이 아닐까 하고 예상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모차르트 레퀴엠보다는 베르디의 분위기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모차르트도 아니고 베르디도 아니고, 그저 포레일 따름이었다. 세자르 프랭크나 드뷔시의 곡에서 느껴지는 프랑스적인 분위기가 전해져왔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형식이었다. 일반적으로 레퀴엠들은 최소한 Requiem, Kyrie Eleyson 다음에 Dies Irae와 Tuba Mirum 이렇게 세 곡이 이어지는 패턴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데, 포레의 곡은 Introitus and Kyrie라는 첫 악장이 실질적으로 Requeim and Kyrie eleyson의 역할을 하고, 바로 Offertoire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 Sanctus가 나오는데, 사실 Offertoire(봉헌곡)와 Sanctus(거룩하도다)는 다른 레퀴엠에서는 중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용도로 많이들 쓰이는 Lacrymosa(눈물의 날) 이후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포레의 경우는 Lacrymosa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Sanctus 이후에 Pie Jesus(Blessed Jesus)라는 생소한 악장이 있었고, 그 이후에 Agnus Dei와 Libra Me가 뒤따라 나왔다. In Paradisum이라는 역시 또 생소한 악장이 나오는데, 보통 레퀴엠에서 마무리는 Requeim and Kyrie Elsyson을 반복하는 것과 다른 점이라 하겠다.
형식적인 면 말고도 개개의 가사도 상당히 흥미로왔는데, 예를 들면 봉헌곡의 가사를 보면 이렇다. (편의상 라틴어 가사는 빼고 영어 가사만 옮기겠다.)
O Lord, Jesus Christ, King of glory,
deliver the souls of the departed
from the torments of hell and
from the bottomless pit,
from the mouth of the lion,
lest Tartarus shallow them,
lest they fall into the darkness.
내가 이전에 들었던 레퀴엠의 가사를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저렇게 구구절절한 가사는 처음본다는 느낌이다. 교회에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기도를 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하나님은 무릎꿇고 기도드리며 사자의 용서를 구할 대상이 아니라, 바로 옆으로 다가가 왼손을 잡고 눈물을 떨구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된거 같은 느낌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음악 자체도 아주 조용하고 아주 멜로딕한 음악이었다.
연주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처음 듣는 곡이기 때문에 세세히 코멘트를 할 수 없는 면이 있다. 흠을 잡자면 일단 무대 위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다는 것. 합창단이 좀 어수선하게 일어나고 앉았다. 악장 사이가 너무 끊기는 느낌이었다. 합창단 포함 소프라노와 바리톤이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반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괜찮았다. 하지만 PSO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오늘도 좀 보였는데, 지휘자의 페이스를 좀 늦게 따라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지휘 모션에 비해 연주가 좀 감정이 덜 실렸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두번째곡 생상의 세번째 교향곡. 이 곡은 나도 연주한 적이 있다. 예전 글 중 하나에서 마지막 문단에서 잠시 언급했었다. 하여간. 나름 연주했던 곡이고 연주했던 곡 중에서도 좋아하는 곡이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처음부터 현이 서로 안맞았다는 것이다. PSO 현의 매력적인 부분중 하나가 아무리 빠른 트레몰로도 서로 잘 맞춰서 동기화가 잘 된다는 것인데 오늘은 별로 안그랬다. 퍼스트와 세컨드 바이올린 사이에서도 약간 시간차가 있었고, 각 파트 안에서도 트레몰로가 완전히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곡을 해봐서 빠르고 어려운 곡이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좀 아쉬웠다. 기대 수준이라는 것이 있으니.
하지만 1악장의 Allegro부분이 끝나갈 때쯤 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Adagio에서는 아주 좋았다. 퍼스트와 관으로 이어지는 멜로디 연결도 아주 만족스러웠고, 이어 나오는 퍼스트와 세컨드 바이올린이 triplet을 주고 받으며 진행하는 부분도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 부분 제일 좋아하는데 아주 만족. 하지만 그 부분이 끝나고 2악장 들어가는 부분에서 분위기가 좀 바뀌는데 그 분위기의 transition이 약간 어색했다. 아마 다이나믹이 좀 어색하게 이어진 게 그 이유거나 혹은 페르타마타가 충분치 않았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여간 그 부분에서 moving한 음악의 분위기를 조금 가라앉히고 2악장을 넘어간다.
2악장은 16분 음표 스타카토 네개에 이은 4분음표 스포르잔도로 이어지는 음형으로 시작되는데 이게 아주 파워풀하게 연주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다시 퍼스트와 세컨드가 약간 out-phase로 가는게 아쉬웠다. 뭐, 내가 이미 악보를 다 읽었고 신경써서 들었기 때문에 잡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미묘한 느낌의 차이였다. 악장에서처럼 이런 미스매치는 곧 사글어들었다. 연주자들도 서로들어가면서 하니까 처음에는 좀 안맞아도 시간이 지날 수록 잘 맞아지는 경우가 많다. 2악장의 전반부는 그렇게 넘어가고.
2악장의 후반부 maestoso 들어서 본격적으로 오르간 사운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내 생각에 전자 오르간인거 같은데, 그 울림이 연주회장 바닥에서부터 전해져오는게 아주 느낌이 좋았다. 오르간 이외에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첼로였다. 2악장 후반부(4악장으로 취급될 수 있는)의 서주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CDFE|DFA 음형과 주제 부분인 EDEC|DEGA|G- 부분에서 내 기억에는 악보에서는 스타카토 정도를 지시했던 거 같은데, 다른 파트는 스타카토를 빨리 하는 정도에서 처리했는데, 첼로파트만은 거의 스피카토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줬다. 사실 속도가 빨라지면 스타카토와 스피카토가 거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봤을 때 첼로파트는 의도적으로 스피카토를 한 거 같다. 솔직히 소리가 약간 좀 조화가 안되고 튀었다. 튀긴 했는데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다고 하면, '술은 마시고 운전은 했으나 음주운전은 안했다' 수준의 발언이 되나? 하지만 정말 신기하긴 했고 passionate해 보이긴 했지만 거슬린 건 절대 아니었던 거 같다. 관에 대해 언급하자면 곡이 관을 많이 사용하지만 현의 비중도 꽤 높기 때문에 관이 특히 도드라지진 않았지만 충실하고 건실히 볼륨을 채워줬다.
이 곡의 '4악장'에 해당하는 2악장 후반부는 워낙 곡의 분위기가 자주 바뀐다. 재밌는 멜로디가 흘러다가가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어 장엄한 화음이 나오고, 화음이 지나간 후에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나온다. 그래서 이 두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이어주면서 전체적인 텐션을 너무 놓지 않는게 중요한 포인트 아닌가 하는데, 그게 참 잘 된 연주였다.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지나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으면서 마지막 코드가 나올 때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만 마지막 오르간이 조금 더 길게 여운을 남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간 전반적으로 좋은 연주였고, 홀을 가득 채우는 오르간 소리가 멋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난 한 시즌동안 좋은 연주들에 대한 마음으로 나도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기분 좋게 홀을 나올 수 있었다.
Saturday, June 14,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6/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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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ne 10, 2008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
예전부터 가져왔던 궁금증 중 하나는, 과연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건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는 그 오감의 레벨에서부터 그 사람의 선입견이 작용하는데, 자신이 자신을 바라본다면 역시 자신이 원하는 스스로의 모습이라는 선입견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너는 이러이러해" 혹은 "이러이러해 보여"라고 했을 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를 지라도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한 open question으로 남겨놨다.
최근에 Science에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실마리를 남기는 심리학 논문이 나왔다. 정확히 말해서 Review article이다.
Emily Pronin, "How We See Ourselves and How We See Others", Science, 320, 1177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는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는 바와 주변 상황들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러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인식할 때는 직접적으로 시신경에 의존할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는 거울을 이용하지 않는 한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My Thoughts, Your Behavior"라는 소제목으로 요약이 되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교통 체증 때문에 job interview에 늦었을 때, 본인은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주변 상황(situational constraints라 표현)에 의해 늦게 되었다'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결과론적인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저자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돌아볼 때 특징되는 현상을 몇몇 가지로 예시를 제시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능력이 있다는 positive illusions. 자신은 다른 사람에 대해 잘 알지만 다른 사람은 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interpersonal knowledge의 측면 등등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객관적이로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라는 이야기다.
페이퍼에서는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처럼 역지사지의 자세로 다른 사람을 보라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라거나 하는 식의 moral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moral이 없어도, 이러한 비대칭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inference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스스로 바라보는 것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내 평소 생각이었고 서두에도 썼기 때문에 다시 쓰진 않겠다.(고 해놓고 다시 썼지만...) 당위성에 대한 의문은 접어둔 채, 오해라고 말하기 전에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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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ne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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