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음악.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음악. Show all posts

Sunday, March 29, 2009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3/29/09

최근에 PSO를 안가지 않았지만 일이 바빠서 기록을 못했다. 그동안 갔던 것들은

02/06/09 - Borelo
02/22/09 - Carmina Burana
02/27/09 - Dvorak No.8

이 있지만 사실 시간도 지나고 기억이 안나므로, 생략하고 오늘 것으로 쓴다.

A. Webern, Passacaglia, Op.1
E. Korngold, Violin Concerto in D major
F. Schubert, Symphony in C Major, "Great"
Nikolaj Znaider, violin,
Gianandrea Noseda, conductor

베베른의 파사칼리아는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 처음 시작하니까 구조가 단순하게 다가왔다. D-minor로 시작하여 단순한 음 네개짜리 기본주제가 B-f로 이조하여 반복되는 패턴을 가장 기본으로 하여 푸가 식으로 확장이 되는데, 곡 자체가 오케스트라이다 보니까 단순한 주제에서 2성, 3성으로 가다가 결국 베베른식의 무한대로의 발산... 다시 말해 조용하게 시작한 곡은 매우 시끄럽게 끝난다.

그리고 콩골드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 말하기 전에 슈베르트에 말하자면, 슈베르트의 9번 C장조 교향곡은 'Great'라는 부제가 달릴 만큼 규모도 크고, 전반적으로 아주 우아한 곡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오늘 연주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Noseda라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는 자기 기분에 심취에서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큰 모션으로 지휘대 위에서 거의 춤을 추다시피 했다. 그리고 예컨대 각 파트가 들어오는 부분에서 큰 모션으로 '들어오라'라는 지시를 하던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해본 내 경험으로, 그런 지시는 거의 쓸데가 없고, 오히려 연주자를 다급하게 해서 전체적인 호흡을 빠르게 하는 안좋은 효과가 있다. 연주자들도 악보를 다 보고, 프로 쯤 되면 어디서 들어와야 하는 지는 대충 다 안다. 이런 것은 주로 독불장군 식의 지휘자에게서 많이 나오는 모습인데, 결과적으로 연주를 잘했으면 몰라도 이런 연주에서는 excuse가 안된다.

하여간 처음에 6개 음으로 이루어진 서주에서 부터 호흡이 너무 빨랐다. 호른이 실수를 하긴 했는데, 내가 봤을 때 지휘자가 그렇게 유도한 면이 어느 정도 있는 거 같다. 1악장 내내, 마치 주페의 경기병 서곡을 듣는 것과 같은 다급함과 강함이 느껴졌다. 슈베르트, 특히 그 9번 교향곡을 연주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악장은 Andante인데, 이 마저도 거의 Allegro의 속도로 연주하는 '만행'이라고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전체적으로 템포가 빠르다 해도 필요한 부분에서 적당히 완급이 조절되면 듣기 좋을 수 있는데 그런 완급 조절도 없었다. 3,4악장도 마찬가지다. 마치 창을 든 기사가 달려가듯이 빠른 템포와 포르테 위주의 연주를 방정맞은 모션으로 유도하는 지휘자. 돈 받고 연주하는 사람 중에 최악이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다만 오늘 이 연주회가 아깝지 않은 이유가 있었으니, Nikolaj Znaider가 연주하는 Korngold의 협주곡은 매우 훌륭했다. Znaider는 1741년 Guarneri del Gesu 'Ex-Kreisler'를 들고 나왔다. 첫 음을 그을 때부터 영롱하게 울리는 악기의 소리는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오래된 음반에서 듣던 클라이슬러의 톤을 듣는 기분이었다. E현의 두 옥타브 위의 음에서도 악기는 여전히 강하게, 잡음 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바이올린 소리 중에 제일 아름다웠다. 연주 자체도 역시 훌륭했다. Korngold의 곡은 음의 높낮이가 빠르게 변하는 곡이기 때문에 어설픈 슬라이딩과 부정확한 음이 나오기 쉬운데, 그런 것 없이 아주 깔끔하게 연주를 잘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리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적이었던 연주였다.

바이올린 연주에서 악기와 연주자가 영향이 얼마나이냐 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아주 많은 주제이다. 클라이슬러나 엘만처럼 소리로 유명했던 연주자라도 5만원짜리 공장제 바이올린으로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비슷하게 내가 과르네리를 잡는다 해도 그 소리를 내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내 경험적인 생각으로, 악기의 퀄리티는 약간 upper bound역할을 하는 거 같다. 그런 면에서 Znaider가 좋은 소리를 만든 것은 Ex-Kreisler에만 공을 돌릴 수 없다. 결국 연주를 하는 것은 연주자인 탓이다.

Kreisler도 작곡을 많이 했는데, Korngold와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스타일 같다. 고음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과, 바이올린이 처음에는 주제를 담당하다가 나중에 반주와 섞여들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부분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인데, Kreisler가 쓰던 악기로 Korngold의 음악을 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은 훌륭한 고악기 하나가 100년의 시간을 넘나들어 만드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IK

Sunday, November 23,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11/23/08

지금 쓰는 이 글은 연주회가 끝나고 무려 한달이 넘은 시점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각각 연주에 대한 디테일은 많이 빼고 전반적인 인상만을 적도록 하겠다.

L. van Beethoven,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4 in G major, Op.58
A. Bruckner, Symphony No.4 in Ef major
Garrick Ohlsson, piano
Manfred Honeck, conductor

두달여만에 들은 연주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모두 굉장히 친숙한 곡이기 때문에 많이 기대를 하고 갔다. 결론적으로 베토벤의 경우에는 테크니컬하게는 흠잡을 데가 없는 연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고, 브루크너는 훌륭했다.

베토벤의 4번 협주곡은 구조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협주곡에 속하는데, 다른 일반적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전주로 주제를 제시하면 독주악기가 그를 받아오는 형식을 취하는데, 베토벤의 4번째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전주가 있기 전에 독주악기가 먼저 주제를 제시한다.

피아니스트는 굉장히 깔끔한 연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다이나믹이 부족한 연주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베토벤 5번만치는 아니지만 굉장히 피아노가 강함이 있게 연주되어야할 부분이 종종 있는게 4번인데, 소리가 특별히 작지는 않았는데 너무 포르테와 피아노가 구분이 안되는 평이한 다이나믹이어서 곡의 기승전결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반면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연주자는 실수 없는 연주를 보여줬다.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디테일은 좋았으나 구조적으로는 평이한 연주였다.

브루크너의 경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Manfred Honeck이 지휘하는 PSO는 이번이 두번째라고 생각되는데,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오케스트라 전체가 지휘자가 의도하려는 방향으로 잘 따라오는게 밖에서 듣는 사람들도 느껴진다. 게다가 현의 단결된 모습은 역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브루크너의 4번 교향곡은 부제가 Romantic인데, 그렇다고 해서 곡이 딱히 로맨틱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1악장은 시작과 더불어 금관에서 나오는 멜로디, Bf—E-EBf의 간단한 주제와 그의 대위법으로 인한 변주를 반복한다. 2악장은 내가 흔히 말하는, 베토벤 7번 2악장과 더불어서, ‘모든 음악중에 제일 좋아하는 테마’라고 하는 악장이다. 2악장은 다른 악장에 비해 조금 더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악장이고, 3악장은 빠를 스케르초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3악장도 어느정도, 특히 1,4악장을 포함해서 이 곡은 로맨틱하다기보다는 약간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여 쓰여진 고전적인 곡이라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단순한 주제가 겉으로 드러나고, 그 주제를 얼마나 잘 숨기고 혹은 잘 드러내느냐가 얼마나 이 곡을 잘 연주했느냐 하는 키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날 연주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훌륭했다. 일단 파트별 볼륨의 밸런스가 잘 맞아서 서로 주제를 주고 받음에 있어서 주제가 과장되거나 혹은 주제가 묻히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2악장에서 멜로디의 진행이나 3악장의 박자감도 우수했던 거 같다. 하여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디테일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구조적으로도 훌륭했다.

이번에는 게을러진 관계로 한달이나 늦는 감상문을 올린다. 실제 작성 완료 날짜는 12월 27일 동부시간으로 5시 25분이지만 11월 23일로 날짜를 바꾸어 포스팅한다.

Monday, November 03, 2008

인순이 논쟁에 대해서

바쁜 주말을 보내고 집에 와서 한가하게 인터넷을 틀어보니 대중가수 인순이가 예술의 전당에 공연신청을 냈다가 탈락했고, 그것으로 인해 무슨 기자회견을 열어서 '대중가요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나보다. 그리고 리플들은 줄줄이... 뭐 논란이 많이 섞이지만 대개 '예술의 장르에 우열을 없다'라는 거에 동의를 하는 거 같다.

사실 프랑스의 브리짓인가 브지릿인가 하는 난 별로 이름도 관심 없는 아줌마 혹은 할머니가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 미개한 나라라고 하면서부터 한국에 '상대주의'가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거 같은데, 물론 상대주의는 개고기를 먹기 때문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서로간 교류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철학이다. 아마 나 역시 예술 장르의 우열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 예술인가', '누가 예술인인가' 라는 문제는 굉장히 예민하고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순이를 예술인으로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늘 아침에 그룹 미팅을 하면서 랩 친구가 수학적으로 잘 풀려진 논문을 하나 소개했다. 꽤 유명한 Raymond Goldstein이라는 사람이 'Physical Review Letters'라는 물리학에서는 저명하고 Impact factor도 높은 저널에 쓴 논문이다. 하지만 읽고 나서 대체적으로 'It's not a physics'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 왜냐? 물리학자가 물리학회지에 낸 논문이지만 내용이 물리적이지 않았게 때문이다. 기계나 화공학과에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지만, 그리고 그들은 물리문제를 잘 풀지만 그들이 수행하는 프로젝트를 물리문제라고 하지는 않는다. 비슷하게 공연과 예술의 차이는 iPod을 만드는 일과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일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세상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 가진자의 도구 쯤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클래식 팬으로서 참 아쉬운 일이다. 난 인순이 사건의 본질은, 클래식 혹은 '예술'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지는 사회적 지위를 의식한 인순이가 지나친 주장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인순이가 훌륭한 공연가이고, 한국의 대중음악에 공헌한 바가 크다고 해서 그가 예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연구진이 아무리 반도체 칩을 잘 만들어도 그들은 공학자이지 절대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케이. 돌려 말하지 않고 핵심으로 바로 가보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거다. 어떠한 행위가 예술로 불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하다.

1. 행위자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행위를 통해 의도적으로 드러날 것.
1. 의도성이 있으며 의도가 전달될 가능성이 있을 것.
3. 행위 자체가 완전히 창의적일 것. 혹은 최소한 창의적인 부분이 존재할 것.
4. 행위에 제약이 있을 것. (다른 사람이 재연했을 때 재해석의 여지가 있을 것)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필요조건이 되겠다. 여기서 내가 인순이를 예술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1번 때문이다. 대중음악 공연이 창조적인 면이 있고, 제한된 무대에서 제한된 음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정말 예술가다운 대중음악인을 볼 기회를 많이 접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보통의 클래식 음악가에게도 마찬가지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저것들은 예술에 대한 나의 일반론인데, 내가 제일 익숙한 것이 음악이므로, 음악에 대해 말을 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인이, 자신의 세계관을 음악을 통해 표현해야 하고, 그 표현된 것이 의도적으로 청중에게 전달이 되어야 예술성이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순이도 나름의 철학와 세계관이 있을 것이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의 고민을 그의 음악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는지,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공연에서 과연, 청중이 중심이 아니라, 예술가가 중심이 되는 공연이었는지, 과연 나는 의심스럽다. 정말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면, 아무런 설명이 없이 그 자체만으로 그 의도적인 의사전달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음악이 일종의 '언어'로서의 작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대중가요들이 얼마나 '언어'로서의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만들어지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모두가 다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등은 모두 자신의 오선지에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그 평생의 커리어에서 통일된 흐름이 느껴진다.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Pink Floyd같은 그룹들의 작품도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들. 지기스발트 쿠이켄이나, 힐러리 한 등의 연주를 들으면 그 연주를 위해 준비했던 많은 연구와 고뇌의 시간이 느껴진다. 반면 그렇지 않은 연주자들도 많이 있다. 연주에 메세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메세지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메세지가 있어도 효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나 나는 별로 예술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본다. 물론 인순이씨도 메세지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양으로서 예술가의 레벨을 논할 때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술의 가치가 모두 동등하기 때문에 인순이가 그곳에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예술의 전당 대관신청을 해서 내가 바이올린 연주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그곳에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동일하다. 각각의 예술인들의 마음 속에서 그들이 예술을 대하는 진지함에는 큰 차이가 없을지는 모르곘는데 (사실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문화적 상대주의'는 맞는 말이다. 예술의 장르별로 우월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건 있다. 예를 들어, 현미밥을 좋아하건 백미밥을 좋아하건, 그건 취향의 문제이다. 그런데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갓 수확한 햅쌀로 지은 밥보다 '햇반'이 맛있다고 하면 이건 취향이 천박한거다. 혹은 갓 삶은 '영덕대게'보다 '오양맛살'이 맛있다고 주장하면 그거도 취향이 천박한거다. 다시 말해서 전자악기를 사용하고 음향장비를 통해 노래를 부른다고 그게 단풍나무로 조심스레 깎은 바이올린보다 가치가 떨어지거나 혹은 더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인이 고뇌하는 시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내가 아무리 바이올린을 연습해서 기교적인 곡을 10분동안 연주 한다고 해도 John Cage의 침묵의 4분 33초보다 더 예술성을 부여받을 수는 절대로 없다.

무조건 다 취향의 문제로 취급해버리기에는 '무엇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문제는 공허해져버린다. 이거도 옳고 저것도 옳을 수 있다 해서 황우석을 훌륭한 과학자라고 판단할 수 없는 거 아닌가.

IK

나는 사실 '대중음악'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다. 단어 자체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의 '예술적 행위'를 하고 다닌다. 어느정도 자신의 존재와 세상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하며 그것을 의도적으로, 그만의 방법으로 표현을 한다. 어떤 사람이 '예술가'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대중'이 하는 '예술적 행위'의 정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양의 예술적 행위를 해야 한다. '예술가'는 애초부터 '대중'과 격리되어 있는 것이 그 단어에 내재된 뜻이 아닌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는 거는 상상하기 어렵다.

Saturday, September 27,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9/27/08

John Adams, Short Ride in a Fast Machine
P. I. Tchaikovsky, Concerto in D major for Violin and Orchestra
G. Mahler, Symphony No.1 in D major
Joshua Bell, violin,
Manfred Honeck, conductor

오늘은 2008-2009 시즌 개막 연주였다. 레퍼토리로 선정된 곡이 워낙 유명한 곡들에다가 앞으로 당분간 (아마 오래) PSO의 musical director가 될 Manfred Honeck이 상임 지휘자로서 첫 연주를 하는 날이라 역시 사람들이 꽉 찼다.

일단 trivia를 좀 적자면, PSO는 역사적으로 많은 훌륭한 지휘자를 배출해냈다. Otto Klempler, Fritz Reiner, Willian Steinberg, Andre Previn, Lorin Maazel, Marris Jansons가 1920년부터 2004년까지 PSO을 이끌다가 Jansons가 Royal Concertgebouw로 옮겨간 이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Andrew Davis라는 사람을 'Artistic Advisor'라는 이름으로 임시로 앉혀놓는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Manfred Honeck이 새로 Musical Director의 직함으로 다시 부임을 했다. 내가 알기로 이 계약은 일단 종신직이라 알고 있다. Honeck은 사실 내가 잘 모르던 사람인데 일단 위키페이지에서 대충 볼 수 있고, 보다시피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비엔나에서 공부한 연혁으로 사실 말러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아직 Honeck이 Klempler나 Reiner등의 역사적으로 잊혀질 수 없는 초대형 거장들, 그리고 Previn, Maazel, Jansons등의 살아있는 거장들과 견주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겠으나 오늘 연주를 듣고 그래도 역시 전임자들에 비해 부끄럽진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임자들에 비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칭찬인지는 Klempler나 Reiner등이 얼마나 이름이 높은 사람들인지 강조해도 부족할 거 같다.)

하여간 첫 곡, (곡 이름이 너무 길어 기억하지 못하는) Adams라는 사람의 곡은, 이름에 비해 짧았다. 대충 4-5분의 간결한 곡이었는데 곡 전체를 지배하는 퍼커션이 인상적이었다. 난 이미 이 곡에서 말러가 어찌할 지 대충 감이 잡혔는데, 퍼커션이 곡 전체를 지배함에도(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구하고, 현이 상대적으로 아주 active했다. 이전에도 PSO의 현 파트는 활의 사용 부분까지 맞추는 통일성과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지만, 오늘은 그거보다 한단계 진일보한 활의 사용이었다. Honeck이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라 그런지, 활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지시를 받은 듯 했다. 다시 말해 보잉이 편한 보잉에서 소리가 좋은 보잉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지휘자의 바통의 움직임을 따라 연주방식이 적절히 변하는게, 지난 시즌 연주에서 보이던 지휘자가 하던말던 하던대로 하는 나쁜 습관이 많이 없어진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관/타악기가 주를 이루는 곡에서 현이 죽지 않았다는 게 왜 중요하냐면, 관/타악기에 비해 현악기는 표현력이 훨씬 좋다. 내 입장에서 현을 관/타악기 소리에 묻히게 연주한다는 것은 세심하고 미세한 표현의 자유도를 줄이고 다만 큰 소리로 관객을 공갈하겠다는 의지로 보일 뿐이다. 하여간 그래도 이해할 만한 곡에서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휘자의 자신감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러를 하기 전에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있었는데, 협연자는 Joshua Bell이었다. 이 냥반은 유명하긴 한데 실제 연주를 들으면 좀 듣기 싫은 종류의 연주자인데, 난 그래서 왜 이 사람이 유명한가 아주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예전에 이 사람이 연주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음반을 산 적이 있었는데 음반은 좋더라. 그래서 당시에 나는 내가 콘서트에 갔을 때 컨디션이 안좋았겠거니 했었는데 오늘 연주를 듣고서 라이브에 약한 연주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시작할 때 보면 대충 3도를 간격으로 솔로이스트가 A4에서부터 E6까지 올라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 사이 음들이 너무 잘 안들렸다. 다시 말해 좋은 연주는 every single note를 다 연주하는 연주이어야 할진대, 전반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생각했는지 너무 많은 음표를 대강 날려버렸다. 그래서 흐물흐물한 연주가 되어버렸다. 또 그 부분은 triplet 두개 + 16분음표로 그려져있어서 앞의 6개 음표와 뒷 4개 음표가 속도가 달라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섬세한 표현도 포기하셨다. 그부분 뿐 아니라 꾸밈음 같이 생긱 부분은 모두 날려버렸는데, 물론 안한건 아니다. 다만 너무 성의가 없었다는 거다. 점입가경으로 카덴짜에서는 8도화음에서 낮은 음들을 아예 생략하시더라. -_- 3도 하모닉스도 음정이 제대로 맞는게 없었고.

2악장은 들어줄 만 했다. 하지만 2악장은 나도 연주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넘어가고. 3악장은 전반적으로 이 사람이 힘이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활이 빨리 이동하지 못해서 전반적으로 활을 조금 쓰고, 속도로 쳐져서 오케스트라가 높여주는 긴장감의 맥을 풀어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은 듯 했다. 난 이 시점에서 눈을 감고 들어봤는데, 오케스트라와 솔로이스트의 소리가 완전히 격리되서,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며 각각 내 좌우 100m에서 서로 각자 연주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경우 나는 오케스트라와 솔로이스트 둘다 점수를 주지 않는데, 오늘의 어울리지 않음은 주로 솔로이스트가 부지런히 활을 움직이지 않아서라고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 연주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무나 데리고 나와도 이만큼은 하겠지 싶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우레와 같던데, 역시 비주얼 이펙트가 중요한거 같다. 열심히 하는 척 헤드뱅잉을 해대니 사람들은 좋아할 수밖에. 하지만 난 오늘 악장 사이에서 박수를 쳐댄 청중들한테도 제발 귀를 열고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앞에 보여지는 쿨하게 생각 바이올리니스트가 헤드뱅잉 하는 거 보고 착각하지 말고, 눈감고 들어보라고. 음악은 그저 취향일 뿐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예술성이 있거나 없는 연주는 존재한다.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거나 양념게장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차지만, 킹크랩보다 게맛살을 좋아하는 건 천박한 식성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오늘 Bell의 연주는 프로의 연주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이러다가 귀만 높아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는데 -_-

하지만 말러는 대단했다. 내가 들어본 말러 연주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긴장감을 줘서 한시간의 연주가 끝나고 나니 내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져있었다는 것. 말러가 처음 이 곡을 작곡했을 때 이 곡은 현재의 1악장과, 2,3,4악장이 한데 묶인 전/후반부 스타일이었는데 그래서 1악장은 사실 아주 긴 서주 같다는 느낌이 든다. 1악장 전체적으로 A음이 팽팽하게 베이스가 되는데, D장조음에서 A음이면 5도화음에 해당하는 음으로 앞으로 뭔가 더 일어날거 같은 그럼 느낌을 주는 화음이다. 이 A음이 한 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intense하게 유지되어서 아마 곡 전체를 두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 같다. 1악장 멜로디가 나오는 잠시, 그리고 2악장에서 아주 잠시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3악장의 'Are you sleeping, brother John?'변주곡은 principal bassist가 아주 침착하고 훌륭한 연주를 했다. 곧이어 각 파트가 돌림노래로 주제를 연주하고 웅장한 4악장도 잘 연주가 되었다. 맨 마지막 끝나기 대략 10마디 전쯤에서 현이 드디어 관에 밀리기 시작해서 좀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현은 있는 힘껏 파워풀한 연주를 했다. 하지만 연주 전체를 두고 봤을 때 Honeck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긴장감'이었던 듯 하다. 아마도 긴장감은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았던 빠르기와 정확한 음정으로 만들어진 말러의 의도된 불협화음, 그리고 긴장을 풀어줄 때 제대로 풀어준 파워풀한 관 등등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주 내내 목이 빳빳했다.

말러 1번은 'Titan'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그래서 '거인이 어쨌다고'에 대해 연주의 해석이 갈릴 수 있다. 전체적으로 D major인 곡이지만 3악장은 단조다. D장조가 되기 위해서는 sharp이 3개 붙어야 하는데, F, C, G, 이렇게 세 개다. 하지만 3악장에서는 F가 natural이고 B 하나에만 flat이 붙는 D minor가 된다. 보통 말러 2번 교향곡 'resurrection'에 대비시켜서 3악장을 장송곡으로 말하여 1번의 주제가 '거인(의 죽음)'으로 생각하는 음악가도 많은 거 같은데,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태생의 지휘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하다. 거인은 4악장까지도 살아있었고, 첼로와 비올라와 베이스가 그 큰 발자국 소리를 냈다. 아마 거인이 1악장에서 잠에서 깨어나 4악장에서는 완전히 걸어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조성된 느낌이다.

보통 말러의 교향곡을 말할 때는 1번의 거인과 2번의 부활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구조적으로 2,3,4번을 묶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자신의 가곡에서 주제를 따와 각 악장이 coherent한 구조를 가지는 2,3,4번과 보다 고전적으로 작곡된 5,6,7번, 그리고 좀 더 진보적인 8,9,10이 작곡 기법적으로 확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1번을 2,3,4번과 엮어서 1,2,3,4번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1번의 경우도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에서 주제를 가져왔으므로 2,3,4번과 엮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처음에 1번이 교향시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따로 분류한다는 생각이 든다.)

3악장을 장송곡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말붙인게 아니라 말러 자신이 적어놓은 것인데, 오늘 Honeck의 연주를 보면 확실히 3악장이 장송곡 풍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앞뒤 2,4악장의 맥락으로 봐서 별로 거인의 생명력을 줄일 생각인 없었던 거 같다.

결론적으로 '긴장감'이라는 테마가 얼마나 의미있는 해석이고, 혹은 3악장이 말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오늘 Honeck이 제시한 테마는 내가 이 곡을 지금까지 들으면서 이렇게까지 강조된 것을 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몇주 후로 예정된 말러 2번에서 지휘자가 어떻게 곡을 풀어나갈지 호기심이 든다.

IK

Saturday, June 14,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6/14/08

G. Faure, Requiem, Op.48
C. Saint-Saens, Symphony No.3 in C minor, Op.78, "Organ Symphony"
Yan Pascal Tortelier, conductor

오랜만에 PSO공연. 2007-2008 시즌 마지막 공연이었다.

일단 첫 곡 포레 레퀴엠. 사실 나는 이 곡이 처음이다.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레퀴엠 등과 함께 인기 있는 레퀴엠 중 하나이고, 게다가 다른 레퀴엠들과는 형식적으로 많이 다른, 종교적 색채가 적은 레퀴엠으로 많이 이름이 나 있는 곡인데, 이상하게 이 곡을 가까이 들을 기회가 없었다. 최근에도 CD를 살까 하다가 그냥 공연에서 처음 들어보기로 하고 말았다.

하여간 첫 느낌은 예상과는 달리, 아주 조용한 곡이었다는 거다. 낭만음앗 시대에 만들어졌고, 종교적 색채가 적다고 하고, 게다가 오르간에 하프를 두대씩이나 사용하는 편성을 생각하면, 관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곡이 아닐까 하고 예상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모차르트 레퀴엠보다는 베르디의 분위기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모차르트도 아니고 베르디도 아니고, 그저 포레일 따름이었다. 세자르 프랭크나 드뷔시의 곡에서 느껴지는 프랑스적인 분위기가 전해져왔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형식이었다. 일반적으로 레퀴엠들은 최소한 Requiem, Kyrie Eleyson 다음에 Dies Irae와 Tuba Mirum 이렇게 세 곡이 이어지는 패턴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데, 포레의 곡은 Introitus and Kyrie라는 첫 악장이 실질적으로 Requeim and Kyrie eleyson의 역할을 하고, 바로 Offertoire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 Sanctus가 나오는데, 사실 Offertoire(봉헌곡)와 Sanctus(거룩하도다)는 다른 레퀴엠에서는 중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용도로 많이들 쓰이는 Lacrymosa(눈물의 날) 이후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포레의 경우는 Lacrymosa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Sanctus 이후에 Pie Jesus(Blessed Jesus)라는 생소한 악장이 있었고, 그 이후에 Agnus Dei와 Libra Me가 뒤따라 나왔다. In Paradisum이라는 역시 또 생소한 악장이 나오는데, 보통 레퀴엠에서 마무리는 Requeim and Kyrie Elsyson을 반복하는 것과 다른 점이라 하겠다.

형식적인 면 말고도 개개의 가사도 상당히 흥미로왔는데, 예를 들면 봉헌곡의 가사를 보면 이렇다. (편의상 라틴어 가사는 빼고 영어 가사만 옮기겠다.)

O Lord, Jesus Christ, King of glory,
deliver the souls of the departed
from the torments of hell and
from the bottomless pit,
from the mouth of the lion,
lest Tartarus shallow them,
lest they fall into the darkness.

내가 이전에 들었던 레퀴엠의 가사를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저렇게 구구절절한 가사는 처음본다는 느낌이다. 교회에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기도를 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하나님은 무릎꿇고 기도드리며 사자의 용서를 구할 대상이 아니라, 바로 옆으로 다가가 왼손을 잡고 눈물을 떨구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된거 같은 느낌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음악 자체도 아주 조용하고 아주 멜로딕한 음악이었다.

연주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처음 듣는 곡이기 때문에 세세히 코멘트를 할 수 없는 면이 있다. 흠을 잡자면 일단 무대 위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다는 것. 합창단이 좀 어수선하게 일어나고 앉았다. 악장 사이가 너무 끊기는 느낌이었다. 합창단 포함 소프라노와 바리톤이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반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괜찮았다. 하지만 PSO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오늘도 좀 보였는데, 지휘자의 페이스를 좀 늦게 따라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지휘 모션에 비해 연주가 좀 감정이 덜 실렸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두번째곡 생상의 세번째 교향곡. 이 곡은 나도 연주한 적이 있다. 예전 글 중 하나에서 마지막 문단에서 잠시 언급했었다. 하여간. 나름 연주했던 곡이고 연주했던 곡 중에서도 좋아하는 곡이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처음부터 현이 서로 안맞았다는 것이다. PSO 현의 매력적인 부분중 하나가 아무리 빠른 트레몰로도 서로 잘 맞춰서 동기화가 잘 된다는 것인데 오늘은 별로 안그랬다. 퍼스트와 세컨드 바이올린 사이에서도 약간 시간차가 있었고, 각 파트 안에서도 트레몰로가 완전히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곡을 해봐서 빠르고 어려운 곡이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좀 아쉬웠다. 기대 수준이라는 것이 있으니.

하지만 1악장의 Allegro부분이 끝나갈 때쯤 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Adagio에서는 아주 좋았다. 퍼스트와 관으로 이어지는 멜로디 연결도 아주 만족스러웠고, 이어 나오는 퍼스트와 세컨드 바이올린이 triplet을 주고 받으며 진행하는 부분도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 부분 제일 좋아하는데 아주 만족. 하지만 그 부분이 끝나고 2악장 들어가는 부분에서 분위기가 좀 바뀌는데 그 분위기의 transition이 약간 어색했다. 아마 다이나믹이 좀 어색하게 이어진 게 그 이유거나 혹은 페르타마타가 충분치 않았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여간 그 부분에서 moving한 음악의 분위기를 조금 가라앉히고 2악장을 넘어간다.

2악장은 16분 음표 스타카토 네개에 이은 4분음표 스포르잔도로 이어지는 음형으로 시작되는데 이게 아주 파워풀하게 연주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다시 퍼스트와 세컨드가 약간 out-phase로 가는게 아쉬웠다. 뭐, 내가 이미 악보를 다 읽었고 신경써서 들었기 때문에 잡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미묘한 느낌의 차이였다. 악장에서처럼 이런 미스매치는 곧 사글어들었다. 연주자들도 서로들어가면서 하니까 처음에는 좀 안맞아도 시간이 지날 수록 잘 맞아지는 경우가 많다. 2악장의 전반부는 그렇게 넘어가고.

2악장의 후반부 maestoso 들어서 본격적으로 오르간 사운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내 생각에 전자 오르간인거 같은데, 그 울림이 연주회장 바닥에서부터 전해져오는게 아주 느낌이 좋았다. 오르간 이외에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첼로였다. 2악장 후반부(4악장으로 취급될 수 있는)의 서주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CDFE|DFA 음형과 주제 부분인 EDEC|DEGA|G- 부분에서 내 기억에는 악보에서는 스타카토 정도를 지시했던 거 같은데, 다른 파트는 스타카토를 빨리 하는 정도에서 처리했는데, 첼로파트만은 거의 스피카토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줬다. 사실 속도가 빨라지면 스타카토와 스피카토가 거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봤을 때 첼로파트는 의도적으로 스피카토를 한 거 같다. 솔직히 소리가 약간 좀 조화가 안되고 튀었다. 튀긴 했는데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다고 하면, '술은 마시고 운전은 했으나 음주운전은 안했다' 수준의 발언이 되나? 하지만 정말 신기하긴 했고 passionate해 보이긴 했지만 거슬린 건 절대 아니었던 거 같다. 관에 대해 언급하자면 곡이 관을 많이 사용하지만 현의 비중도 꽤 높기 때문에 관이 특히 도드라지진 않았지만 충실하고 건실히 볼륨을 채워줬다.

이 곡의 '4악장'에 해당하는 2악장 후반부는 워낙 곡의 분위기가 자주 바뀐다. 재밌는 멜로디가 흘러다가가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어 장엄한 화음이 나오고, 화음이 지나간 후에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나온다. 그래서 이 두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이어주면서 전체적인 텐션을 너무 놓지 않는게 중요한 포인트 아닌가 하는데, 그게 참 잘 된 연주였다.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지나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으면서 마지막 코드가 나올 때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만 마지막 오르간이 조금 더 길게 여운을 남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간 전반적으로 좋은 연주였고, 홀을 가득 채우는 오르간 소리가 멋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난 한 시즌동안 좋은 연주들에 대한 마음으로 나도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기분 좋게 홀을 나올 수 있었다.

Saturday, April 26,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4/25/08

요즘 글 쓰는거 보면 거의 공부 안하고 콘서트홀만 다니는거 같은데...

P. Hindemith, Concert Music for Brass and Strings, Op. 50
W.A. Mozart, Concerto No. 3 in G major for Violin and Orchestra, K.216
R. Schumann, Symphony No.3 in Ef major, Op.97, "Rhenish"
Chee-Yun, violin,
Andres Cardenes, conductor

하여간 이번에도 다녀왔다. 무슨 일이 좀 있어서 전날 밤을 새서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에 갔다. 그래서 첫 곡 힌데미스는 기억이 없다. 사실 힌데미스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게 아닌데 하도 피곤해서 안잘 수가 없었다.

두번째는 김지연님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 major인가? 아마 그럴거다. 사실 바이올린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한테 이 곡은 애환이 담긴 곡이다. 거의 유일하게 '배워본' 협주곡인 동시에 배우면서 선생님의 수많은 갈굼을 당해본 그런 곡이다. (아 물론 나는 이거 말고 다른 협주곡도 배워보긴 했다.) 뭐 그래서 처음에 프로그램을 보고는 '왜 하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듣고 싶어지는 그런 곡이고. 사실 그래서 이 곡은 프로가 연주한다고 하면 약간 스탠더드가 높아지는, 그런 곡이다.

하여간 처음에 일단 인상적이었던 것은 1악장 첫 도입부분과 3악장 마지막 마무리 부분을 솔로이스트가 같이 연주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솔로이스트가 그러지 않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런 식으로 오케스트라와 일치감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이날 솔로이스트와 오케스트라는 상당히 잘 조화를 이루었다.

처음에 D-Bf-G 코드를 긋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살짝 out tune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702년에 만들어진 ex-Strauss라는 Stradivarius를 쓴다는데, 소리가 고음에서 상당히 분명하고 선명했다. 저음으로 가면 고음처럼 직선적이진 않은데 여전히 소리가 뭉퉁해지지 않았다. 역시 그리고 기대대로 1,2,3악장 모두 잘 넘어감. 3악장에서 약간 불안한 부분이 있었는데 사실 거기는 너무 쉬운 부분이라(=나도 안틀리는 부분이라) 의도한 건지, 내가 잘못들은건지 모르겠다. 어려워서 불안했을리는 없고...

정말 일관성 있고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와 잘 어울리는 연주라서 딱히 어느 부분을 찝어서 이야기할 것은 없고, 생각이 나는 거라면 약간 멜로디라인보다는 화음의 흐름(?)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4/4박자 곡에서 8분음표로 멜로디가 이어진다면 한 마디 안에 8개의 음표가 생기고, 그 중에 4개의 음은 '정박'에 해당한다. 그렇게 '정박'와 '엇박'을 이루는 두개의 음표가 더블렛을 형성한다고 보면 되는데, 그 더블렛에서 첫음에 상당히 강조가 되었다는 거다. bow pressure나 speed로 보나, '정박'에 해당하는 음에 강조를 많이 둔 건 사실인거 같은데, 그로 인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모차르트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상당히 멘델스존 비슷한 분위기가 났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그리고 카덴차도 좋았다. 1악장은 제 2 주제를 조를 옮겨가면서 카덴차가 진행이 되었고, 2악장에서는 조옮김은 없었지만 옥타브 이동 등을 거치며 진행이 되었다. 1악장과 2악장 카덴차의 전개 양상이 상당히 달랐다. 게다가 처음 들어보는 거라서 직접 작곡하신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네.

하여간 모차르트는 이렇게 잘 끝났고,

슈만 3번. 난 슈만 참 좋아한다. 브람스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슈만음악도 좋아하는건 당연한건가. 슈만 음악 하면 브람스와 비슷하게 뭔가 꽉 짜여져있는 멜로디가 매력이고, 꽉 차는 듯 힘있게 진행하는 파워있는 연주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음악이라는게 취향이라서 말하기가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이날 PSO의 연주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른 말로, 내가 매 순간 기대하는 소리가 나왔다. 예전에 Andres Cardenes의 지휘로 PSO가 베토벤 4번인가를 연주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상당히 변화 없는 평면 일변도의 연주에 별로 감흥을 받지 못한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상당히 다이나믹도 살아있고 좋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러 성부의 멜로디가 힘차게 진행되는 모습이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위태위태 했다는게 절대 아니고, 모든 파트가 유기적으로 이어져서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 정말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슈만은 내 생각에 베토벤 다음으로 스케르초를 잘 쓴 작곡가인데, 이날 연주는 2악장 스케르초보다는 4악장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장엄하게'의 뜻을 지닌 'Feierlich'라는 악상으로 주어진 이 교향곡의 느린 악장이다. (전체 5악장의 교향곡임) 너무 느리지 않으면서 적당한 빠르기로 진행이 된 거 같다. (사실 글 쓰면서 자발리쉬가 지휘한 드렌스덴 슈타츠 카펠레의 연주로 다시 듣고 있는데, 아마 연주회 당일 나의 다른 이유로 인한 멜랑꼴리한 기분으로 인해 느린 4악장이 더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홀을 꽉 채우는 진동이 내 몸을 감쌀 때 오랜만에 음악의 진정한 의미에서 일부가 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IK

Sunday, April 20,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4/20/08

J. Corigliano, Tournaments
S. Prokofiev, Concerto No. 2 in G minor for Violin and Orchestra
E. Elgar, Enigma Variations, Op.36
Leonidas Kavakos, violin
Yan Pascal Tortelier, conductor

2주만의 PSO연주였다.

일단 첫 곡은 Corigliano, 평소처럼, 그냥 그랬다. -_-. 이번엔 그래도 제목이 '토너먼트'라 뭔가 좀 와닿는 느낌일 까 했는데 역시 그다지... 토너먼트라면 뭔가 떠오르는 게 '경쟁' 그리고 그에 뒤이은 '승부의 결정'과 그에 따른 '승리자와 패배자 구도의 생성'인데, 많은 파트가 많은 부분에서 유니즌을 연주하며 서로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승부는 결정되지 않고 나중에 연주가 끝나고 박수를 받을 때는 모두가 박수를 받으며 '승리자'의 역할을 했지 패배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바로 '윈-윈'게임의 토너먼트인가 -_- 하여간 나한테는 '토너먼트'라는 개념의 핵심인 거 같은 '패배로 인해 쫓겨남'의 느낌이 없어서 계속 그 느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감상의 시간이 끝났다. 차라리 여러 파트를 경쟁시켜서 지휘자가 승리하는 파트를 지정해줘서 나중에 그 파트만 일어서서 박수를 받으면 좀 제목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 이상하다고? 예전에 Corigliano가 작곡한 'Promenade Overture' (예전 글 참고)를 기억하는 나는 그런 식의 퍼포먼스가 오히려 Corigliano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두번째 곡, 프로코피예프 G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이거는 내가 들어본 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들어본 것은 다른 곡이었나보다(아마 1번을 들어본 듯). 하여간 처음 듣는 곡이었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곡은 참 잘 몰입되었다. 특히 2악장의 triplet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네 개의 화음을 느린 아르페지오로 반복해 진행하는 구조였는데, 화음은 계속 I-IV-IV-V (아마도)로만 오가지만 상당히 melodic하게 들렸다. 상당히 인상적인 악장이었다. 처음에 오케스트라가 반주로 행하던 화음 네개의 느린 아르페지오가 나중에 바이올리니스트의 피치카토 멜로디가 되는데, 그 과정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바이올리니스트 Kavakos에 대해서 인상적이었는데,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연주를 듣고 상당히 인상을 받았다. 일단 손가락이 아주 빨리돌아가고 인토네이션이 아주 정확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bow division이었는데, 예전에 미샤 엘만이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를 동영상으로 봤던 기억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bow division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사용할 만큼을 정해놓고 그 범위 안에서만 활의 무브먼트가 이루어졌으며, 오직 필요할 경우에만 그 변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활의 특성(?)상, 한번 내려간 부분은 다시 올라와야하고, 한번 올라간 부분은 다시 내려와야 한다. Kavakos는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실제로 바이올린을 하다 보면 악보의 모든 음표가 적절한 음색/음량을 가지도록 활 사용 계획을 세운다는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Kavakos는 테크닉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악보를 펴놓고 아주 많이 연구를 하고 아주 많이 연습한 티가 좔좔 났다. 호감도 급상승...

앙코르로는 바흐의 A단조 소나타 (BWV 1003)의 세번째 곡 Andante를 했는데 안단테 답지 않은 조금 빠른 템포와 지나치게 장식적인 강한 비브라토가 내 귀에 좀 거슬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훌륭했다. 역시 bow division은 인상적이었고, 다만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해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흐의 로맨틱한 해석을 염두해둔다면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 이자이 앨범을 냈다고 하는데, 이자이는 웬지 괜찮을 거 같다. 이자이는 바흐와는 달리 로맨틱한 해석도 나름 어울리고 하다못해 랩소디가 되어도 좀 어울리니까. 그나저나 앨범 자켓은 좀 압박

마지막은 Enigma variations인데, 내가 이 곡을 처음 알게 된 게 아마 2001년 kaist-이화여대 오케스트라 교환 연주에서 이대분들이 카이스트에 와서 연주했던 곡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 다른 남자 단원들과는 달리 연주자보다 연주에 집중했기 때문에 엘가에 좋은 느낌을 받았고, 곧이서 cd를 사게 되었었다. 그리고 Enigma variation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여기를 눌러서 위키페이아를 참고해도 되고, 하여간 이 곡은 엘가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느낌을 살려 곡 안에 집어넣은 것인데, 사실 나는 그 엘가의 주변 사람들의 캐릭터에 대해 알기 못하기 때문에 엘가의 implementation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예컨대 이자이가 자신의 무반주 소나타에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보다는 훨씬 덜 abstract하고 더 느낌이 와닿는다.

하여간 나는 프로그램을 펴놓고 읽으면서 매 변주를 들었는데, 무엇보다 엘가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들으면서 그냥 미소가 지어졌다. 연주도 흠잡을 없이 훌륭했지만 일단 레퍼토리가 좋았다. 사실 없는 시간 쪼개서 Enigma는 꼭 보러 간게, 내 lifetime dream중에 하나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theme을 가지는 것과, 그 theme을 주변 사람들이 기억되도록 변주를 해서 바이올린 솔로 곡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게 2001년 Enigma variation을 처음 듣고 나서 떠오른 발상이기 때문에 나의 독창적인 발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냥 좋을 거 같다. 내가 오늘 이 곡을 들으면서 Elgar와 그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해보는 것과 같이 나와 내 주변사람들이 모두 둘러 앉아 들으면서 '하하하 거참 말 되는 음악이네'하고 웃을 수 있는 음악적 표현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아마 내가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를 즐겁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밖에 느낀 점은 하인즈홀도 역시 3층보다 1층이 비주얼이나 음향이나 좌석의 편함이나 모든 면에서 낫다는 거다. :)

IK

Saturday, April 05,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4/05/08

C. Debussy, Sarabande & Danse
F. Chopin, Concerto No.2 in F minor for Piano and Orchestra, Op.21
C. Debussy, Jeux
L. Janacek, Sinfonietta
Emanuel Ax, Piano
Charles Dutoit, Conductor

이번 공연은 원래 그다지 갈 계획이 아니었는데, (사실 바빠서 요즘 공연에 대해서는 많이 잊고 있었다.) 자주 공연에 같이 다니던 분이 어떻게 공짜표가 생겼다고 그래서 갑자기 같이 가게 되었다. 이번 공연의 특이한 점은, 내가 아는 곡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레퍼토리에 끌려서 공연에 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대개 한 곡정도는 내가 아는 곡인 경우가 대개인데, 이번에는 정말 특이하게도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곡이 더 많긴 하지만 말이지.

하여간, 일단 Dutoit나 Ax나 예전에 연주를 갔었던 경험이 있다. Ax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었고, Dutoit는 요즘은 Philadelphia와 Royal Phil에서 지휘한다는데 지난 20년간 Montreal에서 지휘를 했었다네. 아무래도 Quebec주가 프랑스 인구가 많은 지역이니, 그걸 생각하니 아무래도 선곡이 이해가 됐다. 드뷔시야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이고, 야나첵은 체코 사람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베토벤 브람스로 연결되는 선상에 있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사실 야나첵은 작곡가보다 야나첵 필하모닉으로 더 이름이 익은거 같다. 야나첵 사중주도 유명하지. 물론 유명하다는 거만 알고 직접 접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여간 예전에 Dutoit의 연주는 상당히 인상깊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찾아봤는데 마땅히 남긴 기록이 없는거 같은데 (기록을 남긴거 같은데...) 하여간 '이름값을 하네'라고 생각했던거 같다.

하여간 오늘 공연은 결과론적으로 그저 그랬다.

첫 곡인 드뷔시의 Sarabande and Danse는, 드뷔시가 작곡하고 라벨이 오케스트레이션을 한 곡이라는데, 역시 나는 드뷔시나 라벨이나 좀 아직은 멀게 느껴진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사라방드는 뭔가 전통적인 사라방드적인 이미지가 전혀 없고, 멜로디가 딱히 귀에 박히질 않고 대체 곡의 주제는 뭘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끝나버렸다. 끝나는데 화음이 클래시컬 하게 마무리 되는 거도 아니라서 끝나는 지도 몰랐다. 이건 뭥미... 사실 곡에 대해 모르면 연주가 어땠는지 말하기도 참 그렇다. Danse도 마찬가지로. '이건 좀 리듬감이 있는게 좀 댄스라는 말이 어울리네' 정도의 감상정도다. 하지만 더 이상 인상적이지 않았고.

Ax의 쇼팽은 이번에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거의 기립박수치던데, 난 그럴만한 연주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곡을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삑사리처럼 들리는 이상한 화음도 없었고, 그냥 무난하게 연주 잘 했는데 그냥 그저 기계적인 연주였다. 처음부터 일정한 템포, 변화없는 다이나믹, 잠시도 틈이 없는 호흡. 뭐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나마 파워풀하기라도 하더니, 나중에 가니 연주자가 지친건지 내 귀가 지친건지 더 이상 아무 느낌 없는 다이나믹이 지속되면서 지겨워져버렸다. 뭐 이만하면 거의 혹평 수준인데-_- 뭐, 테크니컬하게는 흠잡을 데 없이 매 순간 순간 정확한 건반을 누르긴 했다. 그저 그 이상이 없었다는게 아쉬운거지. (여전히 혹평인가 -_-)

사람들이 박수를 많이 치니까 앵콜을 했다. 역시 쇼팽의 Grand Waltz in Af, Op.34-1을 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한 연주고 잘 굴러가는 연주이긴 했는데... so what? 키신 연주를 보면 키신이 항상 정확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키신은 음표와 쉼표의 템포를 잘 조절하여 클라이막스를 만들 줄 안다. 모든 음악이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지루한건 사실이더라.

인터미션이 끝나고, 다시 드뷔시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Jeux. 난 프랑스어를 모르는데 아무리 듣고 있어도 Jeux가 무슨 뜻일지, 어감이 어떤 어감인지 전혀 감이 안잡혔다. 그래서 결국 프로그램을 열고 해설을 읽는데 'Game'이라는 뜻이란다. 여전히 뭥미 ㅡ.ㅡ; 하지만 그 다음줄을 읽어보고 좀 이해가 됐다. 이 곡은 남성 댄서 한명, 여성 댄서 두명이 공연하는 발레를 위한 음악으로, Jeux(Game)의 의미는 프로그램의 표현을 빌리자면, 'the erotic games of flirtation, pursuit, resistance and yielding'이란다. 이쯤 되니 음악이 살짝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순간 표제음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게 음악을 이해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하여간 음악은 정말 스포츠 게임이라면 굵고 직선적인 멜로디여야 할거 같은데, 상당히 멜로디가 가늘고, 주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수석이 대화하듯이 멜로디를 주고받으며, 멜로디가 monotonic하지 않고 되돌아오는 느낌이 있다는 면에서 상당히 '남녀가 벌이는 게임'이라는 면이 이해가 됐다. 이 곡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들어보고 싶은 곡이다. 하지만 왜 여성 댄서가 두명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부러울(?) 따름이다.

마지막 곡은 야나첵의 '신포니에타'. 이 곡은 좀 포스가 남달랐다. 일단 플룻이 네대나 되는데, 이정도면 좀 많다 정도인데, 트럼펫 12대, 트롬본 네대, 투바 네대, 거기에 베이스 트럼펫 세대, 베이스 투바(이 악기는 하다못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투바가 더 베이스일 수 있어? -_-) 이쯤되면 대략 덜덜덜... 역시 예상대로 현은 관에 묻혀서 소리 한번 제대로 안들리고. 게다가 핀란디아처럼 현이 반주해주고 관이 멜로디하는 거도 아니고, 관이 멜로디도 하고 반주도 하고, 현은 왜 앉아있는건지...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건 트럼펫이 그렇게 많은데 동시에 연주되는 성부는 두개인 거 같았고, 아무리 좋게 봐야 세개정도 되어보였다. 이쯤 되면 트럼펫을 많이 넣은 것은 볼륨을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는데 이쯤되면 한번 더 덜덜덜... 말러에서도 호른이 10대쯤 나오는데, 이거와는 비교도 안되게 호른의 이용이 제한적이고 훨씬 더 우아하다. 야나첵은 좀 관악기 리소스를 좀 낭비하는 듯 했다. 친척중에 취직이 안된 관악기 전공자라도 있었던 걸까. 뭐 썩 맘에 드는 곡은 아니었다.

뭐, 지난번에는 Dutoit의 연주에 상당히 즐거웠는데 오늘은 일단 레퍼토리부터 생소했고, 게다가 별로 와닿는 멜로디도 아니라서 그냥 금방 홀을 떠났다.

IK

Sunday, March 16, 2008

Carmina Burana by Pittsburgh Ballet Theatre

Octet
Known By Heart Duet
Carmina Burana
Pittsburgh Ballet Theatre Orchestra
Charles Barker, conductor
Mendelssohn Choir of Pittsburgh
Jennifer Saunders, soprano
Dillan McCartney, tenor
Brian K. Johnson, baritone
at The Benedum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발레 공연은 오랜만인 데다가 공연 작품들의 크레딧이 music, stage, choreography 등등 다양해서 다 쓰기 어려워서 그냥 공연작품 목록만 대충 적었다.

음, 하긴, 발레공연이라고 썼지만 오히려 현대무용이 더 적절한 용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편의상(?) 이후에서 발레와 현대무용 두 용어를 혼용해서 쓸 거 같다.

사실 나는 오직 Carmina Burana에 관심이 있어서 갔다. 처음에는 Carmina Burana가 한시간 정도인데 그럼 공연이 한시간이려나...하고 갔는데 가보니 다른 작품 두개가 인터미션 전에 배치가 되어 있었다. 내가 원체 발레에 대해 아는게 없는데 인터미션 전 공연 두개에 대해서는 음악도 아예 생소하니 사실 감상이 어려웠다. Octet이라는 작품은 제목에서 유추되듯이 8명의 dance였고, Known by Heart 역시 제목에 써진 대로 남녀 한명씩, 둘이 하는 Duet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8명이서 하는 공연이나 2명이 하는 공연이나 둘다, 그다지 좌우대칭이나, 댄서들의 싱크로나이제이션 면에서는 별로 인상적인 면이 없었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well-defined periodicy... 다시 말해, 뭔가 서로 unison으로 움직이는 모션도 없었고, canon처럼 한 마디를 두고 댄서간의 반복되는 움직임, 그런 거도 없었다. 뭐 그래도 이 사람들도 연습 많이 하고 했을 테니, 그런 것들도 다 의도된 것이 아닌가 한다. 뭐, 사실 더 이상 잘 모르겠다.

Carmina Burana는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의 흐름이 대충 어찌 되는지 알기 때문에 나름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클래시컬한 리드미컬한 모션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고, 발레의 모션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예컨대, 첫째로, Carmina Burana에는 그 안에 Chapter가 있어서 그 사이에 막을 내리면 좋을거 같은데, 그게 좀 불명확했다. 예를 들면 그 Chapter의 마지막 곡보다 한 곡 전에 막이 내려진다거나. 그런 점이 있었고.

또 하나는 내 생각에 Carmina Burana가 남성중심적인 곡인데 너무 발레는 여성 발레리나 위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2장 In Taverna에서 첫곡 Estuans interius의 경우, 6쌍의 남녀 댄서가 무대 위에 있고, 나머지 한명 남자 댄서가 동떨어진 댄스를 하고 있는 점에서 그 곡의 가사와 어울리는 안무라고 할 수 있겠는데, 3장 Cour D'Amours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 무대 위의 주인공이 여성 댄서로 바뀐다. 내 기억에 3장에서도 여전히 Orff는 남성적인 시각으로 곡을 진행해가고 있었고, Tempus es iocundum에서는 분명히 남녀가 동등하게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본적인 시각 자체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주인공이었다거나, 그 다음곡 Dulcissime의 경우는 소프라노 노래지만 확실히 여성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 안무처럼 여성이 공중으로 솟구치는-_- 안무가 되면 굉장히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뭐, 사실 내가 Carmina Burana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냥 그렇다고.

다만 댄스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모두 받는 예술에서 표현하고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할 거 같다. 아직은 이 사람들이 댄스를 통해 표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IK

그나저나 공연 갔다왔다는 얘기에 아는 분의 코멘트:
"i haven't seen a guy who goes to ballet performances on his own"

Sunday, February 10, 2008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02/10/08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Lowrence Loh, Conductor
Antonio Vivaldi, The Four Seasons for Violin and Orchestra, Op. 8
Sarah Chang, Violin

오랜만에 장영주공연. 장영주 빠돌이로서 기대하던 공연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말해 오늘 공연 전체적으로 너무 안좋았다. 홀의 장치설비도 이상했고, 오케스트라 실력도 좀 이상했고 하다못해 장영주의 비발디도 별로였다.

길게 쓰려면 좋은 소리 별로 안나올 거 같으니 그냥 오늘 글은 웬만하면 간결하게 끝내련다.

일단 무슨 연유인지, 사전 구매표를 찾는 현장의 줄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그게 공연시간까지 줄지 않았다. 결국 나는 5분정도 홀에 늦게 들어가게 됐는데, 그러한 사정이 있으면 당연히 연주를 늦게 시작했어야 하는데 내가 문을 열려고 하니 이미 베토벤 7번의 A음이 그어지고 있더라. 그리고 나서는 1악장이 끝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베토벤 7번의 경우는 1악장과 2악장이 아주 자연스럽게, 쉼표 한두개 있는 것처럼 스물스물 이어지는 곡에다가 2악장이 아주 좋기 때문에, (참고로 나한테 세상 모든 음악중에 제일 좋아하는 멜로디를 찾으라면 분명히 베토벤 7번 2악장도 그중에 들어갈 것이다)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너무 뜸을 들이면 2악장이 죽는다. 사전 구매표를 늦게 찾을 수 밖에 없었떤 사람들이 1악장 이후에 대거 들어오면서 이게 거의 5분정도 곡이 멈추었다. 말러 2번 연주같으면 몰라도 베토벤 7번은 절대 이러면 안된다. 전체 공연을 10분 늦게 시작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 들여보내고 시작했어야 옳다.

그리고 장영주 공연에서, 여름의 2악장 쯤에 갑자기 홀 안의 스피커가 켜지고 화이트 노이즈가 새어 나왔다. 그래 이건 그럴 수 있는데 왜 금방 안끄냐고. 그러다가 왜 그걸 얘기하러 퍼스트 맨 뒤 바깥쪽 사람이 들어가냐고... (안쪽도 아니고...) 그 사람이 왜 나중에 다시 들어오냐고... 하여간 여러가지 면에서 너무 허술함이 들어난 연주였다. 여기까지 그냥 연주가 아닌 부분에 대한 불만이고, 본격적으로 연주 얘기를 하자면,

홀 밖에서 베토벤 7번 1악장을 들었을때 현이 너무 쳐진다는 생각을 했다. Loh라는 지휘자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한국계란다. 하여간 이 사람이 1악장 템포를 늦게 가져가는데, 그러면 활을 쓸 때 적당한 스피드로 해주면서 슬러를 바꿔줘야 소리가 제대로 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활을 너무 긴 박자동안 천천히 내리니까 템포도 쳐지는데 볼륨이 확실히 쳐졌다. 첼로, 베이스 파트가 꽤 힘이 있었던 것과 비교해서 너무 허리(2nd vn, va)가 약했다.

2악장은 무난했으나 지휘자의 붙점 지시를 오케스트라가 안따라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휘자는 바통 모션을 통해서 좀 더 리드미컬한 연주를 지시를 하는데 오케스트라는 그걸 보기는 하는건지...

3악장은 별 감흥 없었고, 4악장에서는 지휘자가 점점 템포를 당기는게 눈에 보이는데 여전히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결국은 지휘자가 원하는 템포로 점점 당겨져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좀 들을만한 연주가 나왔다. (그래서 Loh라는 지휘자에 대해서는 일단 판단 유보. 괜찮은 지휘자 같긴 하다.) 하지만 트럼펫의 대형 삑사리... 게임오버...

장영주의 사계. 아무래도 장영주는 비발디와는 궁합이 안맞는거 같다. 전반적으로 너무 이상했다. 난 음악의 다양한 해석을 좋게 바라보는 편이지만 비발디와 같이 작곡가가 주제를 정한 음악의 경우는 해석의 범위가 상당히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할 때는 연주자가 느끼는 사계절의 모습을 표현하도록 애써야지 그게 전혀 생뚱맞은 연주가 되면 곤란하다는 것인데, 장영주의 사계는 같은 계절 같은 악장 안에서도 너무 coherence가 없어서 대체 이 사람(사라장)이 느끼는 계절이 뭔가...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뭐랄까, 너무 예측 불가능한 연주라서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에 직면한 사계절' 정도의 느낌이었달까. 그러면서도 프레이즈간 전환이 너무 굼뜬게, 예를 들어, 여름 3악장, 폭풍이 다가오는 시상의 경우, 폭풍이 다가오다가 잠시 사람들이 대피하게 기다려주는 느낌이 드는게 마치 일기예보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봄에서 2악장, 뜬금없는 스피카토 어색했다. 여름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활터치가 너무 길어서 예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을에서는 1악장에서 너무 디테일을 뭉개버리셨고... 게다가 꾸밈음은 너무 오바를 해서 삽입하셨다. 겨울에서는 1악장이 너무 쳐졌고, 2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너무 강한 소리를 내서 언밸런스했다.

전반적으로 낭만파 혹은 집시적인 랩소디를 듣는 기분이었는데 같은 악장 내에서 지나친 템포의 변화 뿐 아니라 지나친 꾸밈음과 절제되지 않은 비브라토, 슬러보다는 어색한 스피카토 혹은 지나치게 강한 데타셰 일변도의 주법이 바로크적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장영주의 비발디 해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글을 쓴다 해서 물론 이게 장영주의 capacity에 대한 의문은 아니다. 여전히 장영주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며, 다만 비발디의 해석은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마치 마이스키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듣는 것과 같이,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좀 과한 측면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바로크 음악은 오묘해서 꾸밈음과 비브라토가 많이 사용되긴 하지만 남발되지는 않는다. 바로크적인 가장 올바른 해석은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연주가 모범적이라 생각되고, 현대적인 해석이라면 아주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떤 경우라도 오케스트라와는 철저한 사전 협의를 거쳐서 통일된 음악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연주는 모든 해석의 여지를 차치하고서도, 챔버 오케스트라와 솔로이스트 간의 위상차가 존재했다. 사라장이 템포를 당기면 오케스트라는 조금 있다가 템포를 따라오고, 그 새 사라장은 이미 템포를 다시 늦추고 하면서 엊갈림이 존재했다. 대체로 사라장에 호의적인 나지만, 오늘 연주는 별로 좋은 평을 주고 싶지 않다.

IK

Sunday, February 03, 2008

Handel-Halvorsen Passacaglia, duo for violin and viola

요새 며칠간 Handel의 Passacaglia를 Halvorsen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각색한 곡에 심취해있다. 바로 아래 글에서 Janine Jansen과 Julian Rachlin이 같이 연주한 바로 그 곡이다.

다시 쓰는 기념으로,


by Janine Jansen & Julian Rachlin


by Yuan-Wen & Shang-Wu


by YOUNG Itzhak Perlman & Pinchas Zukerman


by OLD Itzhak Perlman & Pinchas Zukerman

이 곡을 처음 딱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게 정말 duo로 잘 만들어진 편곡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많은 바이올린-비올라 듀오가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두 악기가 비슷한 비중을 가지는 곡을 보지를 못했다. 사실 모차르트의 KV423 같은 경우는 말만 바이올린-비올라 듀오지 실상은 비올라가 반주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모차르트 뿐 아니다 대부분 고전시대 음악가들이 그런 식으로 접근을 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듀오를 고전시대에서 찾기는 정말 어렵다.

네 개의 동영상을 걸어놨는데 이것들이 내가 유투브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연주들이다. 별로 좋지 않은 연주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일단 첫번쨰 Janine Jansen과 Julian Rachlin은 서로 사귀는 사이이고, 상당히 현대적인 해석을 많이 가미하긴 했지만 여전히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팔분음표 5개로 이루어진 스케일에서 서로 대화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두번째 두 중국인의 연주는 비엔나에서 연주되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 두 사람은 비엔나에서 음악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첨부한 다른 비디오에 비해서 이 두 사람은 훨씬 안유명하지만 나는 이 연주가 제일 좋다. 일단 두 사람이 사이가 정말 좋아보이고, 활의 방향이나 연주 방법 등이 너무나 잘 통일되어 있다. 5분 40초경에 나오는 변주가 반복이 되는데 두번째 부분은 활을 브리지에 바짝 대서 특이한 소리를 내는 ponticello라는 주법인데, 하여간 그 부분에서 서로가 저렇게 잘 맞을 수 있다는 거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고 연주하는 두 사람,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이임이 분명하다. 저 연주가 끝나고 바로 남자가 여자한테 반지를 내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거 같지 않냐는거지...

마지막 두개는 펄만과 주커만인데, 이 둘은 10세경부터 서로 알고 같이 연주하던 친구사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연주와, 주커만이 지휘자로 데뷔하고 나서 어느날 바통을 받고 펄만이 협연을 하던 날 행해진 듯한 최근의 연주. 두 사람의 사이의 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최근 연주가 미묘하게 더 좋다.

하여간 대략 이틀간 이 곡에 말림의 결과로 악보를 질렀다. -_-

역시 악보를 보니 까다로운 부분이 꽤 있는데, 그래도 할만한 부분이 훨씬 더 많은 걸 확인. 그리고 비올라로도 해보니 역시 연습하면 될거 같은 예감.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걸 연습해도 같이 할 사람이 없다. 비올라 하는 S누나와 가끔 앙상블을 하지만, 뭔가 이런 곡은 유부녀인 S누나와 하면 안될거 같다. -_- 이 곡의 특성상,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대화하여야 할 거고, 특히 극도로 싱크로나이즈가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역시 이건 여자친구랑 해야 할 거 같다. -_- 그래서 상상을 해봤는데 내가 바이올린을 하고 비올라를 내 지금으로서는 가상의 여자친구가 연주하는것보다는 그녀가 바이올린을 잡고 내가 비올라를 잡는게 더 그림이 잘나올 거 같다.

그래서 미래의 그녀가 바이올린을 하던 비올라를 하던간에, 어떤 경우에도 준비된 남친이 되기 위해 바이올린과 비올라 둘다 연습하기로 했다. -_-

음 요즘 무조건 결론은 궁상이 되는거 같은데. 하여간 이 곡에 말 그대로 빠져버렸다. 슈만은 음악을 하나의 언어로 생각했다던데, 그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서, 저런 highly interactive 연주를 해보고 싶다.

IK

Thursday, January 31, 2008

시시껄렁한 음악얘기



예전에 Janine Jansen공연을 한번 보고 별로 좋은 평을 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이 동영상은 정말, 멋지다.

같이 연주하는 Julian Rachlin은 이 동영상에서 Janine과 연인사이인데, (위키 링크를 보면 Janine이 'former girlfriend'라고 나온다. 아마 깨진 듯. 아싸.) 이 동영상을 보면 정말, 활 쓰는 거나, 핑거링의 방식이 둘이 거의 커플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통일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중간에 서로 눈빛교환하는 걸 보면 정말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연주도 훌륭하고, 두 연주자도 너무나도 확신에 차있고 행복해보이는, 정말 좋은 연주다. 나도 죽기전에 저런 연주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거는 김지연님의 연주이다. 사라사테의 Introduction and Tarantella. 이분은 살짝 낭만음악 스페셜리스트로 이미지가 고정된 거 같기도 한데 확실히 낭만음악에 있어서 이만한 연주 듣기 힘들다. 이거도 그중에 하나고. 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스피카토/테누토가 인상적이다. 사실 대중무대라서 쉽게 쉽게 연주하면서 약간 부정확하게 연주되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충분히 독특한 분위기를 잘 유지한 연주 같다. 아니, 오히려 저 '쉽게 쉽게' 가는 모습이 저 곡과 꽤나 잘 어울리는 분위기가 아닌가 한다. 완벽한 연주라거나 제일 잘한 연주라고 하기보다는, 음악이라는게 모든게 다 맞아떨어져야 좋은 연주가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그리고 표정이 참 행복해 보여서 좋다. ㅎㅎ

---




N. Paganini의 Caprice 24번. 아무래도 바이올린 하는 사람중에서 테크닉의 상징인 곡일 것이다. 앞선 연주는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 두번째는 알렉산더 마코브의 연주.
Markov는 Markovian Process로 유명한 과학자 Paganini Specialist라는데, 연주가 모범적으로 아주 훌륭한 연주라기보다,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친다. 파가니니라면 저런 자유로움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마 연주 자체는 하이페츠가 모든 정확성 면에서 훌륭할 거 같지만(실제로 마코브는 특히 완전8도 화음에서 상당히 불안한 면이 좀 있다), 그리고 파가니니가 20세기에 환생했어도 하이페츠보다 테크닉에서 못했을 거 같지만, 하이페츠의 '이건 껌이야'하는 듯한 무표정함에 비해서, 괴상한 머리를 하고 스스로 파가니니의 환생인 듯 세일즈를 하려고 마음먹고 나온 마코브의 연주가 은근히 더 끌리는 면이 있다. 게다가 악보에 지시되지 않은 반복도 하는 하이페츠와 달리(이거 이해 안가는 포인트) 반복을 해도 매 프레이즈가 비슷하게 연주되지도 않는다! 특히 왼손 피치카토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하여간 오늘 컨셉은 듣고 있으면 무언가 끌리는 연주들이다. 사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유투브 동영상들, 같이 보라고 그냥 링크해본거다.

IK

P.S. 그리고 이건 덤. 이 사람들도 참 기발하고 재미있다.



ㅎㅎㅎ

Sunday, January 20, 2008

Peer Gynt와 Tannhauser

Edvard Greig의 유명한 곡 중에 Peer Gynt Suite No.1 and No.2 가 있는데 이 둘은 기악곡으로서 Henrik Ibsen이라는 노르웨이의 극작가가 만든 Peer Gynt라는 극에 피쳐링된 음악을 추린 것이다. 순수 기악곡이고 그 특유의 북구적인 분위기와 아침의 노래나 솔베이지의 노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로 인해 많이 연주되고 CD로도 많이 나와 있다. 반면 suite가 아닌, 원래의 오리지널 incidental music은 아무래도 suite보다는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최근 마음먹고 Borders CD section을 뒤져서 하나 건졌다.

CD를 소개할 건 아니고, 다만 유투브에 있는 노래를 하나 링크해놓으련다. 궁금한 사람은 노래를 들어보시라고... 소프라노이신 듯한 저 아주머니 얼굴이 좀 압박이지만...


스토리를 보면 Peer Gynt는 집안이 망하고 열라 망나니가 되서 고향을 떠나서 여기저기 방탕하고 타락한 짓을 하고 다닌다. 가끔 돈을 벌기도 하지만 원체 재수가 없으려니 손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결국 늙고 지쳐서 고향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의 옛 연인 Solveig가 반갑게 맞아주어 그녀의 품 안에서 '사랑의 구원을 받고' 편안히 죽어간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 솔베이지의 품 안에서 피어긴트가 죽어가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저 앞에 링크한 솔베이지의 노래인 것이다.

가사를 펐는데 올려보자면,

Kanskje vil der gå både Vinter og Vår,
og neste Sommer med og det hele År,
men en gang vil du komme, det vet jeg vist,
og jeg skal nok vente, for det lovte jeg sidst.

Gud styrke dig, hvor du i Verden går,
Gud glæde dig, hvis du for hans Fodskammel står.
Her skal jeg vente til du kommer igjen;
og venter du hist oppe, vi træffes der, min Ven!

-_-;;; (이상하게 내 귀가 이상한건가 가사와 노래가 싱크가 잘 안된다...)

영어를 찾아봤다.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pring disappear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But this I know for certain: you'll come back again
You'll come back again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Oh-oh-oh ....

God help you when wand'ring your way all alone
Your way all alone
God grant to you his strength as you'll kneel at his throne
As you'll kneel at his throne
If you are in heaven now waiting for me
In heaven for me
And we shall meet again love and never parted be
And never parted be!

Oh-oh-oh ....

머, 나름 아름답다.

러시아의 어떤 통계학자가 러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분류한 결과 모든 이야기가 불과 몇개의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런 류의 스토리 -

남자는 원래 잘난 놈인데 어쩌다 타락하게 되어 여기저기 들쑤시고 이 여자 저 여자 찝적대고 다니다가 결국은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어떤 정신줄 놓은 여자가 그 남자를 여전히 사랑해서 그 남자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무한한 평안을 느끼고 (종교적 혹은 종교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구원을 얻는다.

- 는 무척이나 흔한 거 같다. 아마 남자가 대부분이던 19세기 작곡 환경에서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었으리라. -_-

내가 예전에 다른 곳에 썼던 탄호이저에 대한 감상과도 상당히 비슷하다. 탄호이저는 잘나가는 음유시인인데 육체의 탐닉의 신인 베네스가 사는 베네스버그에 들어간다. 베네스는 탄호이저를 몸으로 맘껏-_- 사랑해주지만... 탄호이저는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운 꾀꼬리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서-_- 인간세상에 다시 나온다. 육체의 기쁨을 알게 된 탄호이저는 다시 잘 나가는 음유시인이 되지만 그의 노래에는 어딘가 모를 음탕한 기운이 있고, 어느날 그의 과거가 탄로나서 그는 로마로 가서 교황한테 용서를 구하는 처지에 몰리지만 교황조차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죽을 준비를 하는데 그를 예전부터 좋아하던 그 지방 영주의 딸 엘리자벳이 그를 대신해서 죽고 그녀의 목숨으로 인해 탄호이저는 구원받는다...라는 스토리다.

이건 뭐 마치 아무리 바람을 펴도 아르웬의 끄떡없는 사랑을 받으며 보호되는 아라곤을 보는 것과도 같고, 아무리 기억을 잃고 들쑤시고 다녀도 결국엔 브룬힐데의 사랑을 받게 되는 지크프리드의 스토리와도 비슷하며 아무리 잠수를 타서 춘향이를 고생시켜도 결국은 해피엔딩에 이르게 되는 이몽룡의 스토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여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토리는 반복되는 거 같다.

이런 부류의 스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기다리는 것은 여자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문제를 만드는 쪽은 남자라는 거다. 아마 남자가 사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여자는 순종하도록 억압되어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모습이겠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리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모든 스토리는 남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닌가. Ibsen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그리그나 바그너나 톨킨이나 상당한 인종주의자였다는 특징이 비슷하기도 하다.

뭐 하여간 다시 스토리로 돌아오면, 역시 예전의 탄호이저에 대한 감상과 비슷하게도, 저런 식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구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운이 좋은 케이스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 주인공들이 어쩌면 누울 자리 확인 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을 수도 있었다는 거다. 이야기과 현실은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 아마도 이야기에서는 이러저러한 정황적 상황이 생략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랑과 비사랑, 도덕과 비도덕같은 개념들이 이야기에서처럼 '삶과 죽음'과 교환될만큼 강렬한 대비구조를 가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지금 나는 그런 식으로 내가 돌려줄 수 없을 많큼의 사랑을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저러한 큰 행운을 누린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사랑'이라는 실체가 무엇이냐는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일단 형이상학적인 질문으로 피해가고 있지만 말이다.

IK

P.S. 머 요즘은 나를 생각해주는 여자도 없는 거 같긴 하지만, 뭐 그런걸 떠나서 나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문제 만드는 데는 저런 이야기 주인공들 만만치 않은거 같다. 저 사람들은 누울 자리라도 보고 누웠지...

P.P.S. 예전에 썼던 탄호이저 관련 글 덧붙인다. 사실 내가 쓴 글 중에 스스로 젤 맘에 드는 글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보면, 바그너 자신도 탄호이저라기보다는
볼프람에 가까웠고, 또 그렇기를 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볼프람보다는 탄호이저에게 더욱 인간적인 냄새를 느끼며,
동질감을 느끼며, 어쩌면 탄호이저처럼 살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볼프람은 바람직한 삶을 유지한 결과 애초부터 구원이 예정되어있었겠지만,
탄호이저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엘리자벳으로 인하여 탄호이저는
겨우, 가까스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찌보면 탄호이저는 베네스부르크에
갔던 죄값으로 엘리자벳을 잃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볼프람에게는
에리자벳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면서 성스럽고 정신적인 사랑을 노래하기보다는,
방탕한 삶과 탐닉하는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받아 언젠가 구원되는,
그런 삶을 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깊은 자아에서는 말이다.

사실 베네스의 마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길 바라지도 않으며,
그렇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모든것이 불분명한 느낌이 든다. 육체와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람들의 계산법도 맘에 안들거니와, 내가 탄호이저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볼프람의 길을 가는 것처럼, 외부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거고.
더구나 쾌락과 희생의 구분은 분명해보이면서도 분명하지 않다.

사실 탄호이저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베네스부르크에 찾아갔으면서도 결국은 엘리자벳으로 돌아왔고,
두 곳의 여행을 통해서 비록 갈등을 했을 지언정 얻을 건 다 얻었으니까.

누구나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길 원하지 않나? 나도 그렇고. - May 30, 2004 -"

Sunday, January 13, 2008

현악기에 대한 단상

오늘 동아리(KAIST Orch) 싸이 클럽에 들어갔다가 누군가가 올려놓은 'Goldberg Variation 현악 삼중주 버젼'을 보게 되었다. 일단 아래 링크하고,



아래는 글렌 굴드가 친 피아노 버젼이다.



내가 이것을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악기가 keyboard에 비하여 얼마나 제한적인 악기냐는 것이다. 혹은 반대로 keyboard가 현악기나 관악기에 비해서 얼마나 편리한 악기냐는 것이다.

내 생각에,

현악기의 가장 근본적인 난점은 현의 개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88개의 건반과 그에 해당하는 현들을 가지고 있는 피아노와 달리 바이올린은 5도 차이로 조율된 달랑 4개의 줄을 이용해서 연주를 해야 한다. 당연히 피아노에 비해서 음역이 제한되고 바로크 시대에 사용되었다는 'curved bow'를 사용한다 해도 동시에 4개 이상의 음을 낼 수 없다. 4개의 음을 동시에 낼 수 있다 해도 '활'이라는 단일건반을 사용하는 현악기는 음 각각의 박자를 독립적으로 낼 수 없다. 그러므로 현악기는 기본적으로 단성악기로 취급되어야 옳다.

저기 삼중주로 편곡된 곡 중에 제일 앞에 나오는 26번 변주의 경우는 멜로디가 두개 존재하는 이성음악으로 봐야 하지만 현악 삼주주의 연주를 들으면 상당히 버겁다. 피아노로는 매우 깔끔하게 연주된다는 점과 상당히 비교된다. 물론 이 곡의 대가인 글렌 굴드의 연주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지만 현악 삼중주 팀의 멤버 역시 명성으로는 뒤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하여간 바이올린을 오래 하면서 느끼는 것은 5도 간격으로 조율된 4개의 현을 가진 악기로 무언가를 연주하기 쉬운 곡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곡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가용손가락이 네개이고(바이올린의 구조상 엄지손가락을 사용해 연주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때문에 현은 5도 간격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몇몇 연주하기 어려운 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A5음과 B5음을 동시에 잡는 화음 코드의 경우 4번가락으로 D현을 잡고 1번 손가락으로 A현을 잡아줘야 한다. 사실 아주 어려운 코드라기 보다 빨리 연주하기에는 부담되는 코드다. 또한 한옥타브가 넘어가는 화음은 거의 잡기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손 크기를 가진 사람이 부담없이 잡을 수 있는 음이 한옥타브까지이기 때문에 한옥타브를 넘는 음의 점프를 부드럽게 연주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건반을 누르면 균일한 소리가 나는 피아노와는 달리 현악기들은 왼손으로 현을 눌러주는 압력에도 음색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을 많이 사용해야하는 곡들은 부담이 따른다. 장 3도 화음이나 장3도를 넘나드는 빠른 스케일이 특히 그렇다. 이런 건 현을 바꾸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새끼손가락을 사용하기에도 불안하고, 뭐 그렇다.

반면 화음이 아무리 많아도 그게 6도 차이거자, 7도 차이(잘 쓰이진 않지만)라면 연주하기 매우 쉽다. 장5도는 어렵다. 한 현의 간격이 장5도 차이이기 때문에 이를 연주하려면 한 손가락을 두 개의 현에 동사에 포개놔야 하는데, 이게 연주하는 스타일에 따라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나처럼 왼손을 뉘여 연주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여기에 대해 첨언하자면 왼손을 쓰는 방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이페츠처럼 손가락을 꽂꽂히 세워서 현을 위에서 '내려찍은' 방법과, 아이작 스턴처럼 옆에서 뉘이는 방법이 있다. 사실 내려찍는 방법이 음정이 더 깨끗하고 자질구레한 소리가 덜 나긴 하지만, 손가락이 짧다면 뉘일 수밖에 없다. 뉘이는게 약간 더 빠른 연주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디고 하다. 나는 새끼손가락이 보통보다 짧은데다 휘어져 있어서 내려찍은 방법은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하여간 정리하자면,
쉬움: 6도, 7도,
까다로움: 2도, 3도, 5도, 8도 이상

그래서 악보를 처음 봤을 때 아무리 화음이 많아도 6,7도가 많으면 쉬운 악보로 분류하고, 2도, 3도 등이 많으면 매우 까다로운 악보로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의 Goldberg variation으로 돌아가자면, 피아노는 각각의 음이 각각의 건반을 가지고 있고 두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동시에 연주할 수 있는 음의 범위와 갯수가 상당히 넓고 많다. 반면 현악기의 경우 자주 쓰이는 화음 중에서는 장6도 화음만이 (약한) 새끼손가락 없이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다성음악을 연주하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자이나 바흐의 소나타/파르티타 들이 멜로디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곡으로 취급받는 이유가 다성 푸가가 그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실 뻔한 애긴데 저 현악삼중주 연주 보고 그냥 써보고 싶어서 써봤다. -_-

IK

P.S. 저 삼중주 관련 검색어로 검색하면 다른 변주들도 다 나온다. 다 보고나니 연주하고 싶어졌다. -_- 누구 같이 할 사람 없나? 나는 바이올린 아니면 비올라 커버 가능. 피츠버그 있는 분 혹시 있음 연락주시길...
2/12편 보면 2분 40초쯤에서 5번 변주 시작되는데 이거 내가 젤 좋아하는 변주다. 멋지다. =_= 헤헤

Sunday, December 16, 2007

내 바이올린

뭐 주변에 보니 바이올린 하는 분들 중에 바이올린 사진이 블로그에 없는 분이 별로 없는거 같아서 나도 분위기 따라...



Walter Mahr, 1991, Made in Germany, "Johanna"

More Pictures...



"요한나"라는 이름은 바이올리니스트 Johanna Martzy에서 따온 것으로 그 분 소리를 좋아하는 내가 지었다. 지금은 Larsen A, D, G에 Pirastro Oliv E 줄 걸어놨다. 92년 이후로 Dominant만 쓰다가 2000년쯤에 Infeld 나오면서 Infeld Red로 쓰기 시작하다가 Larsen으로 바꾼지 한 6개월 됐다. 엊그제 Larsen E가 수명이 다 된거 같아서 Pirastro로 바꿔줬다. 나머지 줄은 좀 더 써볼 생각.

악기 특성이라면, 내가 가지는 악기들이 다 비슷한 방식으로 길들여졌는데, 일단 볼륨이 크다. 딱히 공명이 좋은 악기는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깝다. 소리가 확 터져서 퍼져나가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머문다는 평을 좀 받는 편이고 나도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작년에 한 400불 들여서 브리지와 사운드포스트를 바꿨는데 그 이후로 소리가 좀 더 퍼져나간다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확실히 이 악기는 말타고 달리는 기마병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내가 이 악기에 Johanna라는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활은 2004년에 미국에서 구입한 "Meinel". 아마 제작자 이름인 듯 하고, 상당히 가볍다. 예전에 "Ludwig Scholler"라는 제작자 이름이 붙은 활을 사용했었는데 그 활보다 상당히 가볍지만 무게 중심이 괜찮은 편이라 연주하기 어렵지 않다. 난 1999년 이후부터 Gustav Bernardel 사용한다. 잠시 타르티니 써본 적 있는데 맘에 안들었음.

소리는...

!!WARNING!!: 귀가 썩을 수도 있습니다.

Malinconia from Sonata No.2, by E. Ysaye (악보), played by IK

Grave from Sonata No.2 BWV 1003, by J.S. Bach, played by IK
※ 박자는 의도적으로(특히 말린코니아) 귀찮아서 안지켰음. -_-

교훈: 악기에 신경써봤자 음정 틀리면 말짱 황이다.

IK

Friday, December 07, 2007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12/07/07

John Corigliano, "Phantasmagoria" on The Ghosts of Versailles for Orchestra
Edward Elgar, Concerto in E minor for Cello and Orchestra, Op. 85
Wolfgang A. Mozart, Symphony No. 41 in C major, K. 551 "Jupiter"
Anne Martindale Williams, Violoncello
Leonard Slatkin, Conductor

거의 한달만에 PSO공연을 보고 왔다. 이번 콘서트는 원래 Sir Andrew Davis가 모차르트 39번을 지휘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지휘자와 곡이 좀 바뀐 듯 하다. 상임 지휘자였던 Sir Andrew Davis와 오케스트라가 불화가 있나. 오늘 보니 명단에 음악감독, 상임지휘자 등등의 항목이 하나도 없어서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나는 Andrew Davis를 별로 안좋아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오늘 첫곡은 Corigliano라는 미국 현대음악가의 작품인데, 이 사람 작품을 PSO에서 premere를 많이 한다. 오늘도 World Premere라는데 사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싹수가 보이는 음악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연구실에서 6시반까지 일하다가 집에 와서 급하게 밥을 먹고 가느나 약간 배가 부른 상태에서 홀에 들어갔고, 마침 별로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 Corigliano의 곡이 무려 26분이나 될거라고 하길래, 고맙게 생각하며 식곤증을 해결하는 시간으로 잘 사용했다. 그러므로 오늘 감상은 엘가부터 시작하련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du Pre가 연주한 이후로 더 이상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곡이 되었다. 오늘 연주도 역시 훌륭한 연주였지만 du Pre를 뛰어넘기는 절대로 불가능한 그런 연주였다. 일단 엘가의 첼로 협주곡에 대해 말하자면 매우 테크니컬하게 어려운 곡이라 할 수 있겠다. 거의 브리지 근처까지 핑거링을 해야하고 곡 곳곳에 등장하는 스케일의 속도는 첼로라는 악기의 민첩성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런 부류이다. 하여간 그래서 일단 이 곡이 테크니컬하게 매우 어려운 곡이라는 걸 전제하고 감상을 해야한다. 물론 그렇다고 연주자의 삑사리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참작의 여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Anne Williams는 PSO의 첼로 수석이라고 한다. 사실 이렇게 전문 soloist가 아닌 경우는 오케스트라와 솔로이스트의 관계가 좀 오묘해진다. 뭐랄까. 원칙상 지휘자와 soloist는 동일한 레벨에서 연주를 하게 되지만 이렇게 전문 soloist가 아니고 게다가 같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수석정도 되는 경우, 자신만의 연주를 보여주기보다는 지휘자와 많이 협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주의 경우 사실 연주자가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연주를 할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있더라도 좀 제한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앞으로 연주자에 대한 코멘트는 온전히 연주자에게만 돌아갈 수는 없다. 하여간 연주에 대해 말하자면, du Pre의 연주에 비해 상당히 soft한 느낌의 연주였다. du Pre는 엘가의 음악을 아주 극적인 긴장관계의 프레임에서 바라본 거 같다. 하지만 Williams는 일단 첫 코드부터 부드러운 느낌으로 그었다. du Pre의 경우는 더블스토핑에서 저음부가 아주 빨리 지나가는데, 그런 것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부드러운 느낌을 낼 수 있다.

하여간 1악장은 전반적으로 du Pre보다 상당히 부드러운 연주면서도 기둥이 탄탄한 느낌의 연주로 상당히 인상깊었다. 하지만 2악장 시작하는 피치카토에서 아마 의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첫 피치카토를 아주 약하게 튕겨주고, 두번째 코드는 아주 강하게 피치카토를 했다. 이 부분에서 강한 피치카토는 du Pre의 방식이기도 하다. Williams는 나름 대비를 준다고 약하게 시작하고 강하게 끝난거 같은데 너무 어색했다. 게다가 2악장에서는 빠르게 연주하는 부분이긴 했지만 음정이 너무 안맞고 리듬감이 좀 많이 어긋났다. 더블렛에서 너무 첫음에만 액센트가 주어져서 박자는 지켜졌지만 마치 붙점을 연주하는 거 같은 느낌이 나서 어색했다. 3악장은 느린악장인데 괜찮았다. 사실 느린악장에서 더 실수가 많이 나올 수 있는데, 활을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그으면서 균일한 소리를 하는게 참 인상적이었다. 4악장은 처음에 더블스토핑을 너무 길게 끌고 가더니 나중에 가서는 음정이 좀 많이 틀렸다.

사실 어려운 곡이고, 전문 soloist가 아니기 때문에 브리지에 가까운 지판 부분에서 음정이 불안한거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du Pre와 비교할 껀덕지는 더더욱 안되고. 다만 전반적으로 활을 쓰는 파워가 많이 부족해보였다. 어차피 파워풀한 연주를 할 수 없으니 부드러운 해석을 들고 나온 거 같은데 아직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한 해석이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전반적으로 일관되지 못한 분위기였고 떄로는 어색하기조차 했다. 오케스트라는 특별히 오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soloist와 잘 어울어졌고 삑사리도 없었다.

모차르트 41번은 Jupiter라고 해서 4악장이 유명한 곡이다. 사실 모차르트는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곡의 세세한 부분까지 코멘트를 할 능력이 되나 모르겠지만. 하여간 써보자면, 일단 전반적으로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음정이 안맞은 순간이 한순간도 없었고, 현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트레몰로로 뭉개버려도 잘 모를 부분까지 정확히 맞추는 것은 오랜만에 볼 수 있는 완벽하게 일사분란한 현이었다. 모차르트인 만큼, 현이 주가 되는 음악인데, 관이 존재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튀지 않고 적당히 전체 오케스트라에 녹아 들어가 있었던 것도 참으로 적절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테크니컬한 면으로는 정말 흠잡을 데 없는 연주였는데 지휘자의 해석이라는게, 나도 잘 모르겠다. 보통 우리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보다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데타셰보다는 살타토, 스타카토보다는 스피카토를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첼로나 비올라 등 중저음 악기의 연주에서도 말러에서나 하듯이 강하고 굵은 울림보다는 얇은 울림이 주가 된다. 예를 테면, 직사각형 형태의 음이 아니라 옆으로 길게 늘어진 타원 형태의 음을 만들고 싶어하는게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기본적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하는 모차르트는 각 음이 뒤로 길게 끌어지지 않고 비교적 간결하게 끊어지며 감정의 폭이 그렇게 깊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휘자의 해석은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칼 뵘의 모차르트 레퀴엠에서 느낄 수 있는 장엄한 쪽의 해석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이미 상당히 베토벤 초기 작품과 구조적으로나 악상으로나 비슷해진 모차르트 후기 연주에 대해서 전형적인 전기 음악의 해석법을 굳이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연주가 듣기 거북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KV 551번이면 626번이 마지막인 모차르트 catalog 중에서 상당히 후기 작품에 속하고 모차르트가 죽기 3년 전에 작곡된 곡이라 한다. 이미 모차르트는 생활고를 겪고 있었고, 이 음악 역시 장조 음악이긴 하지만 모차르트 초기나 중기에서 볼 수 있는 발랄한 분위기를 맛보긴 힘들다.

IK

Sunday, November 25, 2007

악기를 다루는 테크닉에 대한 단상

요즘 연습하는 곡에 대해 쓴 김에 하나 더 쓰고 싶다.

며칠 전 이야기다. 내가 아래서 말한 코렐리의 라 폴리아를 연습하고 있는데 J누나가 잠시 우리집에 들렀다. 나는 serious하게 연습하는 경우 중간에 끊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잠시 J누나는 내가 연습을 마칠 때까지 내 연습을 감상했어야 했다. 하여간 내가 연습을 마치고 J누나가 말하길,

"일두 실력이 좋아진거 같아"

흠, 그럴만도 하지. 내가 악기를 취미로 가진지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가는데 몇달만에 실력이 늘을리가 없지만, J누나는 내가 코렐리를 연주하는 것을 처음 봤을 거다. 그동안 J누나가 본 내 바이올린 하는 모습은 내가 이자이를 가지고 헤메는 모습이었을 거다. 아, 몇년간 연습 안한 바흐 소나타로 괴롭혀준 적도 있다. 아, 파가니니도 -_-

하여간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실은 내 실력이 는 게 아니라 곡이 쉬운 거라고 이야기를 하노니, 왜 평소에 어려운 거만 하느냐는 질문을 하시더라고. 뭐, 사실 딱히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던 거 같다.

"할 줄 아는거 또 하고 또 해서 뭐하겠어요. 그런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뭐, 잘 모르겠다. 악기를 하는 이유가 사실 자기가 즐기는게 목적일텐데, 나는 그보다는 그냥 연습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거 같기도. 일단 몇개의 생각을 적어본다.

1. 나도 일단 스스로 즐기기 위해 악기를 한다.
2. 근데 내가 못하면 나 스스로 괴롭다. -_- 그래서 일단 연습은 해야한다.
3. 다른 사람과 같이 연주하는 기쁨이 상당히 많다. 다른 사람과 맞춰서 하려면 그만큼 또 잘 해야하고 그럴려면 연습을 해야한다.

공연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좀 다르다.

1. 나는 연습을 시작해서 다듬어서 일주일 내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거라면 '내 레퍼토리'라고 생각한다.
2. 모든 악곡을 바로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연습을 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항상 웬만큼 하는 곡을 연주가 없음에도 연습하는 거은 시간낭비고 평소에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다.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일단 악기는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악기를 잘 다루게 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기교 없이 음악이 표현 안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술이 음악을 표현하는 기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건 수학과 물리를 똑같이 대비시킬 수 있는데, 마치 물리없는 수식이 물리학자한테 별 의미가 없지만, 물리를 잘하기 위해서 수학적 바탕이 튼튼해야 하는 것과 같다.

물리에서 수학과 물리적 감각 모두 부족한 것을 느끼는 것과 같이 바이올린을 함에 있어서도 기술이나 음악 모두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음악적 감각이나 물리적 감각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고 진도가 더딘데 반해 수학이나 손가락의 무공 등의 테크닉을 익히는 과정은 비교적 빠르다. 그래서 아마 당장 성과가 보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진심으로 물리적 감각이던 음악적 감각을 타고 난 '천재'들이 부럽다. 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며 천재가 될 수 없다. 타고 날 수 없었다 해서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 돌아가는 길이 길 뿐이지.

IK

Saturday, November 24, 2007

샤콘느와 폴리아

언제나 음악 관련한 글을 쓸때는 좀 조심스럽다. 내가 취미로 음악을 오래 하긴 했지만,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경험은 일천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음악에 관한 글은 모두 다 '잘 모르지만'이 앞에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하여간.

요즘 열심히 연습하는 곡이 Arcangelo Corelli의 Violin Sonatas, Op.5 인데, 전체 짧은 곡 12개가 모여있고, 전체 곡을 다 연주하면 대략 2시간 분량이 될 것이다. 키보드 반주가 있으며, 그 중에 제일 유명한 곡이 la folia라는 곡이라는 것(Op. 5, No. 12)과 그 곡이 제일 유명하긴 해도 다른 곡들도 다 음악적으로 좋다는 면에서 약간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와 유사성이 느껴지곤 한다. (아 물론 연주하기는 바흐가 대충 10^3배 정도 더 어렵다.) 하여간,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대표하는 곡이 샤콘느라면, 코렐리의 소나타를 대표하는 곡은 폴리아라 할 수 있는데, 두 곡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비슷한 형식의 변주곡이라는 것이다.

코렐리의 폴리아는 바흐의 샤콘느보다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연상시킬 정도로 각 변주들의 경계가 명확하고, 변주들 간의 화음의 통일성이 돋보인다. 물론 이것은 바흐의 샤콘느가 아주 highly nonlinear한 변주라서 주제와 변주가 많이 어울어졌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긴 하다. 실제로 비탈리와 샤콘느와 코렐리의 폴리아 사이에서는 상당히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테면,

1. 주제가 맨 처음부터 아주 명확하게 제시된다. 하지만 바흐와는 달리 맨 마지막에 반복을 하진 않는다.
2. 주제의 화성을 따라 변주가 제시가 되는데, 주로 아르페지오를 이용하는데 triplet의 사용이 매우 빈번하다.
3. 반주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때로는 멜로디를 맡기도 한다.
4. 아르페지오가 monotonic하게 상승 혹은 하강하지 않는다. 한 화음을 펼친 아르페지오 안의 각 음을 다시 한번 아르페지오로 펼쳐줬다는 의미에서 초기의 폴리포니의 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체적 구성은 모노폴리이다.
5. 변주의 개수가 20여개로 비슷하고, 각 변주 간 구분이 상당히 명확하다. 비탈리와 코렐리 공히 겹세로줄로 구분을 하고 있으며, 악상을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6. 마지막 변주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의 폴리포니가 제시된다.

어찌 보면 시기적으로 비슷한 두 작품이고, 문화적 배경이 비슷하니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같은 샤콘느지만 바흐와 비탈리는 상당히 구조적으로 유사점을 찾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고, 코렐리가 비탈리와 비슷하다면 바흐와 유사성을 찾기는 비교적 어렵다. 이는 내 의견으로는, 바흐의 샤콘느는 완전한 형태의 폴리포니이기 때문에 멜로디 위주의 변주보다는 화음 위주의 변주를 구사했기 때문인가 하는데, 여전히 몇몇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1. 일단 바흐 역시 주제의 제시가 명확하다. 바흐는 하물며 마지막에 반복도 해준다.
2. 바흐 역시 아르페지오의 사용이 눈부시다.
3. 마지막 변주에서 세 곡 모두 일종의 hilight을 두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마지막 변주는 세 곡 공히 매우 빠르며 기교적으로 난해하다.


하여간 잘 연주했던 아니던 간에, 비탈리와 바흐의 샤콘느를 공개석상에서 연주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코렐리의 곡들을 무대에서 연주해야할 숙명을 가지고 있는거 같다.-_- 무대 위에서 연주했다는 것은 연주의 품질을 떠나 내가 그런 곡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역시 코렐리의 곡도, 그만큼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 같다. 일단 Sonata No.5 안에 있는 12개 곡 중에 No.7부터 No.11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서 한번 읽는데 어렵지 않았다. No.1은 오늘 좀 읽어봤다. 1~6번은 7~11번보다는 어려운 거 같다. 10번의 4번째 악장 가보트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음악' 멜로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멜로디이다. (사진 참고)

12번 폴리아는, 스즈키 6번에 간추린 버젼이 나와서 바이올린 배우는 사람들은 비교적 익숙한 곡일텐데 사실 스즈키 버젼과 원곡은 좀 다르긴 하다. 요즘 연습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리 쉬워보이는 곡이라도 깔끔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포지션에서 더블스토핑 할 때 새끼손가락을 사용하는 경우 음정이 자꾸 불안해지는데 그걸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트리플렛을 어떻게 보잉하느냐는 언제나 문제라는 거다. 폴리아 같은 3박자 춤곡의 경우 트리플렛을 한활에 연주하면 이번 마디와 다음 마디의 시작활 방향이 다르게 되고, 2-1로 끊어서 연주하자니 마지막 음표가 좀 거세져서 걱정이다. 그리고 첨부한 악보는 내가 폴리아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데, 그냥 올려본다. (dolce부분)

아 마지막으로 이 음악이 어디서 나오는 지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면 감사. 며칠전부터 머릿속에서 막 맴도는데 어떤 곡에서 나온 것인지 기억이 안난다. 급히 앙코르로 발로 그렸지만... 클릭해서 보시면 잘 보입니다.

Edit on 11/25/07: 이거 뭔지 찼았다. Vivaldi, L'Estro Armonico, No.3, Concerto No. 7 4. Allegro

IK

Wednesday, November 14, 2007

Ivry Gitlis


Ivry Gitlis, 1922-

한국에서 93.1 KBS1 라디오 채널을 자주 듣곤 했는데, 쉽게 말해 그냥 클래식 채널이다. 아마 2004년 봄 어느날이었던 거 같은데, 차를 타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신촌 우리집과 당시 내가 다니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는 사실 차로 가기에 민망한 거리였다. (걸어서 15분정도) 하여간 그렇게 자원을 과소비;;;하면서 학교를 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차이콥스키를 사실 대단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른바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 하나인 차이콥스키의 D장조 협주곡은 자주 들어 알고 있었다. 하이페츠와 오이스트라흐의 명연주 뿐 아니라 꽤 많은 사람의 연주를 듣고 있었는데 그날 라디오에서 나온 음악은 내가 이전에 들어본 음악이 아니었고, 게다가 좋기까지 했다. 이게 내가 Ivry Gitlis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알게 된 계기이다. 그리고 이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차이콥스키 협주곡에 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가 됐다. 사실 오늘 기틀리스에 대해 쓰는건 '그냥'이다. 그냥 이 사람이 연주한 파가니니 협주곡 2번을 듣다가, 내가 이전에 이 사람에 대해 쓴 적이 없는거 같아서.

이 사람은 일단 하이페츠나 밀스타인 같은 precision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오이스트라흐 같은 bowing magician은 아니지만, 음악을 읽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생산해내는데 상당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precision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거 같은 느낌이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다지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메트르놈처럼 박자가 잘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인토네이션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 down bow에서 거친 마찰음도 들리고, 종종 거친 쇳소리도 들린다(이런 테크닉 상의 험담은 '하이페츠나 밀스타인과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람 음악이 듣기 좋은 이유는 감정이 상당히 솔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연주 스타일 상의 특징이라면, 악보에 그려진 화음을 아르페지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전혀 화음이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힘이 실린다는 거고, 에네스쿠의 제자 답게 비브라토가 매우 깊고 느리며, 그리고 보잉이 매우 빠르고, 때로는 허스키하거나 째지는 듯한 고음이 난다(Stradivarius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own bow에서 상당히 힘이 실리며 up bow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솜씨가 특출나다. 게다가 종종 나오는 슬라이딩은 예전에 어떤 다큐멘타리에서 이작 펄만이 지적했듯이 잘못 사용하면 정말 'old-fashioned'로 들리는 기법인데, 이 사람의 슬라이딩은 자주 나오지 않지만 여러개의 stirng을 넘나드는 슬라이딩이 종종 나와서 오히려 비르투우소의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연주 중간에 종종 숨을 고르는 듯하게 쉼표가 강조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게 어떤 의도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 뭔가 느낄 숨통을 열어준다고나 할까.

밀스타인이나 하이페츠와 같은 동시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concert violinist로서 연주를 하는 것에 대해 의무감을 가지며 성실했던 것과 달리, 기틀리스는 상당히 기분파였다고 한다. 약속을 안지키거나 해는 글렌 굴드 식의 기행담의 주인공이 되진 않았지만, 커리어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스스로 즐기고 다른 음악가와 나누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오히려 콘서트나 음반 발매에서 유명해지진 않았다고 하고, 이 사람의 재능에 비해 너무나 명성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야인에 머물던 천재'식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 사람 연주를 실제로 들어보면 속박됨 없이 자유로운 정신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내가 이 사람 연주를 좋아한다. 그런 만큼 이 사람이 바흐나 베토벤을 연주하는 모습을 잘 상상하기 어렵고, 차이콥스키나 파가니니 등의 연주가 특히 좋은 거 같다. 특히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은 상당히 과장된 리듬감과 그 만의 독특한 음색이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파가니니적인 '바이올린다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봐야할 음반 중 하나.

IK

Saturday, November 10, 2007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11/10/07

Johannes Brahms, Hungraian Dance No. 17, 18, 19, 21 (arr. orch. A. Dvorak)
Ludwig van Beethoven, Concerto No. 4 in G major for Piano and Orchestra, Op. 58
Johannes Brahms, Symphony No. 4 in E minor, Op. 98
Nikolai Lugansky, Piano
Marek Janowski, Conductor

지난 주 브람스 3번 공연에 이은 4번 공연이었다.

일단 지난주에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를 브람스 자신이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을 한 1, 3, 10번과 더불어 드보르작이 오케스트레이션을 한 17~21번 중 20번을 연주했었는데 오늘은 나머지 17, 18, 19, 21번을 연주했다.

일단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드보르작의 편곡은 약간 핀트가 안맞는다는 느낌이었다. 18번을 제외하고는 현과 관이 멜로디를 주고 받는 관계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고, 공통적으로 마지막 노트가 너무 웅장하고 장엄했다. 18번에서는 주제를 피콜로-클라리넷-트럼본-현의 순서로 주고 받는데 그건 참 괜찮았다. 19번의 경우는 피콜로가 주 멜로디를 맡았고 거의 독점하다 시피 했는데, 이 곡 자체가 원래 높은 음에서 기교적으로 움직인다는 면에서 피콜로가 상당히 어울리는 악기인 거 같긴 한데 전체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서 피콜로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모습은 뭔가 어색했다. 용의 몸에 뱀 머리가 달린 느낌이랄까.

베토벤의 G Major 피아노 협주곡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중에 하나다. 음악적으로 꽤 많이 통하는 친구가 CD를 선물줬는데 그렇게 처음 알게 된 곡인고, 음악사학자들은 베토벤 1,2번을 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많은 초기작품, 그리고 4,5번을 전형적인 베토벤적인 작품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오케스트라가 상당히 강조된 작품으로 잡는다. 그만큼, 1,2번만큼의 세세한 기교는 없지만 4,5번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고 오케스트라와의 조화가 중요한 곡이라고 생각이 된다. 연주를 한 Lugansky는 니콜라예바의 제자라는데, 난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고, 라흐마니노프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결론적으로 연주가 별로 맘에 안들었다. 일단 전반적으로 실수 없이 무난한 연주였긴 했다. 하지만 베토벤 특유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오케스트라에 많이 섞여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이 연주자가 멜로디를 잘 타긴 한다. 아마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는 잘 할거 같다. 하지만 일단 다이나믹이 부족하고, 리듬을 강조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특히 3악장 같은 경우는 Rondo Vivace인데 rondo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는게 매우 중요할진대, 그보다는 혼자 일방적으로 멜로디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곡에 대해서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같이 가신 분은 다른 견해를 내놓으셨다. 나하고 같이 University Orchestra하시는 분인데, SNUPO 출신이시고, 하여간 이 분도 비올라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인데, 이분께서는 오히려 '베토벤의 어렵고 복잡한 스케일을 듣는 사람이 아주 듣기 쉽게 부드럽게 연주했다'고 좋게 평가하셨다. 결국 음악을 '편하게' 들은 건 같은 데, 나는 좀 더 긴장감 있는 연주를 원했던 거 같다. 아, 게다가 카덴차가 누구껀지 몰라도 너무 주제랑 동떨어져있었고, 상당히 부드러운 연주를 했던 솔로이스트에 반해 오케스트라, 특히 그 중에 현은, 데타셰를 강조하는 보잉이라서 약간 미스매치가 있기도 했다.

브람스 4번. 일단 처음 들어가는 B-G의 완전 3도 내름음형의 레가토가 정말 들어줄 만 했다. 곧이어 나오는 현의 스타카토도 상당히 파워풀 했는데, 1943년 베를린필의 연주만큼 파워풀하진 않은 거 같긴 했다(비교대상이...). 곧이어 나오는 첼로 멜로디도 아주 fulfilling한 연주였다. 처음엔 아주 '파워풀한 레가토'였는데 1악장 중후반부로 가서 전반보다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볼륨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1악장을 마무리짓는 팀파니도 괜찮긴 했지만 기대만치 웅장하진 않았다. 2악장의 경우는 호른이 시작을 하는데 아주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곧 자리 잡고 플룻과 클라리넷으로 멜로디를 넘기는데 목관이 전반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2악장도 무리없이 잘 들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 다시 파워풀해졌는데, 사실 스케르초 악장이라 그렇게 파워풀할 필요는 없어보이긴 했다. 하지만 듣기 거북할 정도는 아니었고, 나름 대비가 큰 다이나믹에다가 리드믹한 연주였다. 볼륨이 약간 큰 듯 한 거 말고는 아주 훌륭한 스케르초였다. 4악장. 4악장도 아주 괜찮았다.

내 생각에 브람스 4번의 4악장의 가장 큰 묘미는 마치 고무줄을 당겼다가 한 순간에 놓듯이, 무언가 열심히 끌어올리다가 순간에 놓쳐버리는, 그런 감정인데, 이게 사실 표현하기 어려운 거다. 비교적 긴 박자를 연주하고 곧이어 비교적 짧은 박자가 나오는 음형이 여러번 나오는데 (이를테면 E-A 음형), 이 경우 첫 음표는 포르테에 비교적 길게 끄는 소스테누토이어야 하지만 두번째 음표는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테누토이어서 안되지만 스타카토이어서도 안되고, 포르테이어서도 안되지만 피아노보다는 커야 한다. 내가 원하는 브람스는 그런 것을 통해 끊임없는 도전과 끊임없는 좌절을 표현하며 그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관계가 조성이 되는 음악이다. 뭐랄까, 도전의 시간은 길지만 좌절은 순식간이며, 마치 몇시간동안 실험 세팅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스위치를 잘못 눌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거나. 그러한 과정 후에 결국 뭔가에 성공하지만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않고 새로운 도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사실 브람스와 같은 음악에 이렇게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는 것은 이상하긴 하지만. 하여간 내가 받아들이는 음악은 이렇다.

오늘 연주에서 이런 면이 참 잘 살려줬다. 특히 앞서 언급한 E-A, E-B 같은 음형이랑, 그 변형인 E-EDE, E-F#EF# 같은 음형에서의 당김과 놓음이 아주 적절했다. 딱히 흠잡을만한 부분이 없고,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4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더 몰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거의 마지막 1분만을 남기고 E~ F#~ G~ A~ B~ 의 느린 상향 스케일 나오고 나오고 말인데, 그 부분에서 조금 더 몰아쳐주면 앞서 차분한 부분과 좀 더 큰 대비개 되지 않았을까 한다. 마치 푸르트뱅글러의 연주처럼 말이다.

IK

managed by Ildoo Kim at Pittsburgh,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