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0, 2009

목수정과 정명훈

요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주제 중 하나가 목수정과 정명훈의 이야기인데, 일단 레퍼런스는 구글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목수정이라는 사람은 진보신당에서 있는 사람인데, 국립오페라 극단이 폐단될 위기에 처해서(? 폐단인지 정리해고인지 모르겠다) 파리에 있는 정명훈에 가서 뭐 서명을 요구했는데 정명훈은 욕을 하면서 도와주지 않았다는 거다.

어쨌거나 논의는 목수정이 이 일을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림으로서 시작되었고,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많은 글에 그동안 그다지 관심있게 보지도 않았고 정확한 사정에 대해 모르는 내가 글을 하나 덧대는 이유는, 주제 자체가 뭔가 좀 헛짚은 문제제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어떻고 진보의 연대가 어떻고 예술가의 진보적 정신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내가 봤을 때 이 문제에 도움이 되는 관점은 딱 하나다.

왜 국립오페라 극단이 한국에 있어야 하는가?

누구나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다른 분야와 독특한 철학을 가지게 마련이고 아마도 정명훈이 뭐 막말을 좀 하긴 했지만 서명 용지를 받아들고 생각하는 그 이면에서는 이게 정확히 뭐가 어찌 굴러가는 일인가 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또한 서울시향의 지휘자로서, 한국 문화예술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이해당사자로서 더 정확한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여간 정명훈은 서명용지를 받아들면서 그것을 '왜 국립오페라가 한국에 있어야 하고', 정명훈 자신이 '왜 그들을 도와야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한국의 예술가의 처우가 어떻고, 그들이 집에서 부양가족이 있는 노동자이고 사회적 약자이고 어쩌고 하는 질문들-내가 봤을 때 목수정이 정명훈을 찾아간 이유-은 일단 정명훈한테 아웃 어브 안중 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명훈이 서명을 안해줬다는 것이 정명훈이 수구꼴통이고 한국의 음악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느니 뭐니 하는 거 자체는 아예 헛짚는거라는 거다. 먼저 정명훈이 걸출한 세계의 음악가중 하나로서 한국의 음악발전에 기여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왜? 그냥 한국인이라서? 한국 말을 할 줄 알아서? 만약 그런 이유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이 없이 그저 국립 오페라 가수 몇명 짜른거에 공감 안해줬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예 논점이탈 수준이라는 거다.

나도 솔직히 그 사람들 짤린거 왜 내가 걱정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비슷한 레벨의 음악가 널리고 널렸고 그 사람들이 짤려서 굶어 죽을 것도 아니고, 국립오페라 있다고 한국의 음악레벨이 올라가는 거도 아니고. 오페라공연 즐기러 돌아다니는 사람도 주변에서 보지도 못했고. 다시 말해서 삼성 협력업체 하나 부도나는거 막아달라고 윤종용한테 가서 부탁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 말이야 다 붙일 수 있지. 부도나는 업체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일원이니 윤종용이 연대의식을 가져야한다. 좀 말이 안되지 않나.

나도 취미활동으로 음악에 발가락 하나 걸치고 사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정말 큰 오케스트라 아닌 다음에야 단원으로만 먹고살기 힘들다. 당연한거 아닌가. 어차피 음악 연주 스킬은 가지고 있는 거고, 대략 2주일에 콘서트 한번 하는데, 콘서트 한번 하기 위해서 리허설 3번정도 한다고 치면, 2주일에 10시간 일하는 것으로 먹고 산다면 말이 안되는 거다. 그래서 합창단/오케스트라에 전업이 없는 거지, 전업이 없다고 해서 그게 예술가들의 처우가 안좋다고 생각할 수 전혀 없다. 뭐 물론 미국에 비해 한국의 처우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소득수준도 다르니까... 하여간 그래서 피츠버그 오케스트라가 당장 없어진다 해도 여기서 굶어죽을 사람은 없다. 왜냐면 다들 다른 일이 있거든.

하지만 아마 피츠버그 오케스트라가 없어진다면 아주 활발한 모금운동과 지역사회의 노력이 있을텐데, 왜냐면 이 지역에서 이 음악단체의 역할이 큰데다가 꽤 활발하고 수준있는 음악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의 초점은 음악가 개개인의 사정이나 소득변화가 아닌, 단체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 역할을 해왔냐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정명훈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한 것을 생각할 때) 정명훈이 서명용지를 받아들었을 때, 국립오페라의 구성원 하나하나를 인간적으로 떠올렸을 지, 아니면 그 단체를 떠올렸을지 상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게다가 지휘자는 소속 연주자를 인격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하지 않다. 지휘자는 합창단/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연주자이고 단체는 그저 악기일 뿐이라고 보면 된다. 하여간 정명훈이 서명을 할지 안할지의 고민에 기로에 서서 떠올린 키워드가 무엇이었을까. 연주자의 처자식? 생계? 한국음악의 발전? 예술가로서 동지의식? 노모를 봉양하는 바리톤의 김씨?

내 장담하건대, 정명훈은 그들을 '예술가'로 생각하지도 않을거다. (마치 교수가 대학원생 퀄 떨어지는 거 보고 과학자가 없어져가네... 하고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다만 '돈이 있냐 없냐', '있다면 지원할만한 단체인가?, 없다면 없는 예산 짜내서 지원할 만한 단체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꽤나 선택권이 주어질 수 있는 대답이다. 노정태의 글에서 나오는 '버스에서 바들바들 떠는 갓난아기'의 예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저 질문들의 대답은 나도 모르겠지만 정명훈의 생각은 분명히 있었나보다. 내가 정명훈을 이해하는 이유는, 그가 새벽에 예고없이 목수정의 방문을 받아 이성이 상실되었겠다라는 측면이 아니라, 둘이 아예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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