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9, 2007

화장실에 대하여

이 블로그의 이름은 IK's Toilet이다.
왜 하필 Toilet이냐. 이 낱개의 글에서 잠시 그 연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철학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시기가 대학 시절이었다. 전통적 철학사조라고 그러면 대충 칸트류의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런 전통적 철학보다는 비교적 현대 철학으로 분류되는 칼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에 빠져있었다. 아니다. 비트겐슈타인과 그 이후에 나오는 파이어아벤트와 로티에 빠져있었다고 하는게 맞겠다. 과학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과학철학의 근간이 되는 분석철학과 수리철학(버틀런트 러셀)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쪽 책을 읽으면서 나름 항상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시절 나는 기숙사에 살았는데, 룸메와 담 없는 한 방에 같이 살았다. 간혹 정말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때 나는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가곤 했는데 여전히 나는 룸메의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내가 부스럭 거리는 것을 룸메도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어떤 곳을 가도 나만의 공간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없기로 유명한 학교 안의 오솔길이나 그런 곳에서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커플-_-이 쌍으로 지나가곤 했으니 말이다.

어느날 아침에 평소처럼 한평도 안되는 작은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자니 타일이 보였다. 원근감으로 인해, 멀리 있는 타일이 가까이 있는 타일보다 작아 보였다. 하지만 바로 붙어 있는 두개의 타일은 크기가 정말 같아 보였다. 잠시 봐서 변하지 않는 것들도 변화가 누적되다 보면 어느새 거시적으로 관찰 가능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6개월동안의 나의 내면의 변화에 대해 인식했다.

그리고 그 좁은 한평 화장실 안에서 난 정말 내가 사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공공화장실의 한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정말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곳이 내게는 가장 사생활이 보장되는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난 이제 600 square feet짜리 집에 혼자 살고 있고, 더 이상 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든 뭐라 하지 않는다. 나한테는 17평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 집 구석에 있는 좌변기에 굳이 가서 앉지 않더라도, 거실 소파에 앉아서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집에 같이 사는 가족이 생긴다면 다시 나만의 공간은 화장실로 제한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상황에서 사회에 어울려 살려면 모든 사생활을 포기해야한다. 어떤 종류의 사적인 것이라도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이 화장실이라는 거다.

P.S.

Speaking the Unspeakable이라는 말은 실제로 J.S. Bell이 쓴 책의 제목이다. Alan Aspect의 유명한 Bell's inequality에 대한 실험에 대해 쓴 글인데, 비전공자를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이 이론의 내용은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현대 과학에 따르면 세상은 기본적으로 non-local하다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주로 local universe에만 관심이 있다. 모든 사건에는 인과관계가 있고 그에 따라 빛의 속도로 정보가 전달된다고 할 때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local universe'는 무한정하지 않다. 하지만 Alan Aspect에 실험에 의하면 과학이론을 본직절으로 nonlocal하다. 이 말은 즉, 쉽게 말해 correlation without causality가 있다는 것이다. 두 사건이 현상적으로 연관이 있긴 하지만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이 존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논쟁중에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블로그 제목 밑에 써놓은 Speaking the Unspeakable이라는 것의 뜻은 이 뜻 외에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를 보면 마지막 문장이 'What we cannot speak about we must pass over in silence'라 하는데, 이 말은 정의가 잘 된 이상언어의 사용을 권장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을 매우 존경하지만 모든 경우에 대해 저 경구가 지켜져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람은 솔직해야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솔직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 관점에서 What we cannot speak about이 the unspeakable이고, 이것에 대해 침묵해야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살짝 비꼬은 것을 J.S. Bell의 correlation without causality의 개념에 살짝 버무린 결과가 저거다.

게다가 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고 쓴 글의 마지막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도 될까?'이다. 의심과 함께 시작된 블로그다.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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