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02, 2007

유학생활과 헤어짐

여름 언젠가 여느 때처럼 J누나한테 밥먹자고 msn으로 말을 걸었던 거 같다. 아니다. 여름학기 중이긴 했지만 확실히 여름은 아니었다. 아마 5월이나 6월쯤 되는거였다. 하여간 그날따라 J누나는 답이 없었다. 그러다 한참만에, 그것도 내가 잠시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웠을 때 한마디를 남겼다.

"나 아틀랜타 가게됐다"

나중에 돌아와서 메세지를 봤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저 그 한마디를 들은 상황이지만, J누나의 지도교수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아침에 J누나가 그 지도교수의 결정에 대해 듣고 하루종일 바쁘게 알아보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판단을 하려 했는지, 그리고 오늘 일어날 일까지. 사실 내가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그냥,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가장 친하게 지내고 같이 밥도 많이 먹었던 J누나는 예정대로, 아니 약간 예정이 틀어지긴 하지만, 하여간 오늘 아틀랜타로 떠나갔다.

......

나도 이제 미국에 나온지 4년째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피츠버그를 떠나갔다. 그러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왔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다른 사람들 남겨두고 이곳을 떠나게 될 운명이다.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유한한 기간의 학위과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영원히 살기 위해 오는 이민과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유학생들은 어딘가 모르게 깊이 정을 나누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공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항상 바쁘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서도 빡빡한 삶은 마찬가지겠지만, 누구나 바쁘고,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 헤어질 사람들일 뿐인 유학생활은 그래서 외롭기 짝이 없다.

어쩌면 학문을 한다는 것이 그런 본질적인 외로움을 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렌 굴드는 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은 외로워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만약 학문이라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신만의 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면 굴드의 지적을 잠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학문의 세계에 외로움이 내재되어 있는거 같지는 않다. 여전히 우리는 토론을 통해 생각을 하며, 교류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외로움에 대한 실험에서도 생각했었는데, 세상을 살면서 진정으로 필요가 전제되지 않은 인간관계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학생활에서 만나는 인간관계가 한국에서 겪던 인간관계보다 훨씬 더 겉핥기식이고, 사람을 항상 만나도 뭔가 공허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런 것이 우리가 언젠가, 언젠가..라고 하기보다는 훨씬 더 일찍, 헤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저 더 나이가 들거나 삶에 더 찌들었기 때문인가. 간혹 '나는 정말 너라는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다만 네가 가진 능력에만 관심이 있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을 볼 때는 약간 불편하기도 하다.

사실 나도 지금 내가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모르겠다.

하여간, 아주 친하게 지냈던, J누나와 남편 S형이 생활의 기반으로서 피츠버그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알수 없게 이런 식의 헤어짐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유학을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석사과정이기 때문에, 나와 같이 유학을 나온 사람들부터, 나보다 2년 늦게 유학을 나온 사람들까지 학위를 마치고 거나, 박사과정을 유학왔던 많은 사람들도 교수의 사정, 혹은 자신의 사정으로 인하여 피츠버그를 떠나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아마 이런 식의 헤어짐이 익숙한 것이라 생각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테리는 이런 상황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른바 이성과는 달리, 이러한 상황과 나의 모습을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모순된 자아의 근원이다. 내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과연 이런 글을 쓰고 있겠냐는 거다.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헤어진다는 일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익숙해졌다는 말을 쓸 수 있을지언정 초연해졌다고 말하기는 아직은 어려운 거 같다. 뭐 꼭 초연해지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냥, 떠나는 사람은 떠나고, 남은 사람은 남아서 할 일을 하는 거겠지만 다만 지금 잠시는 갑자기 밀려든 쓸쓸함을 느끼는 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나의 곁을 떠나서 다시 볼 기약이 없다면, 그가 실제로 죽는 것과 어딘가 살아있지만 못보는 것과 내가 받아들이는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다른 것이 과연 무엇인가? 가끔 피츠버그를 떠나면 또 언제 보랴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S형과 J누나의 경우는 그냥 앞으로도 계속 인연이 끊이지 않을 거 같은 그냥 느낌이 있다. 새로운 땅에서 좋은 일이 있길.

IK

6 comments:

Anonymous said...

흑흑흑

mike said...

H 는 어떤 느낌이 있었삼? ㅎㅎ

To J. Success and nothing less. =)

IK said...

그땐 홀가분했지 ㅎㅎ
사실 졸업하고 가는 사람들은 머 다들 자기 미래를 위해 떠나는 거니까... 좀 다른 거 같기도. 아쉽다고 졸업하지 말고 가지 말란 얘기 할 순 없으니까.

Anonymous said...

뭐 그런거지.. 그동안 고마웠어 일두.
이사하는 날도 수고 많이 했어

IK said...

피츠버그 놀러와요. ㅎㅎ

Unknown said...

슬프다.

나도 2년지나면서부터 너랑 비슷한 느낌을 받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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