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12, 2007

외로움에 대한 실험


BGM: Artikulation, composed by Gyorgy Ligeti

간혹 어떤 사람이 죽어서 한달만에 시체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곤 할 때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나라고 딱히 다르진 않을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전화를 안받으면 그냥 바쁘겠거니 생각해버리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설마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긴 어려울거다.

그래서 한번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여기 미국 시간으로, 2007년 10월 12일 오후 1시부로 Pittsburgh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msn에서 차단 되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msn에 로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10월 13일 0시 부로 모든 전화는 안받을 것이다. 사실 12일 1시부로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도 전화를 안했다. -_-; 학교는 정상적으로 나갈 것이지만 사람에 안띄게 노력할 것이고, 자동차가 움직이면 죽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차를 쓰지 않을 것이며, 집에 작은 스탠드를 제외하고는 불을 켜지 않을 것이다. 실험 대상은 피츠버그에 내가 아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피츠버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거나 실질적으로 소통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포함이다. 랩은 쨀 수 없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나갈 것이다. 먼저 부재중전화를 연속적으로 남기거나 잘 있냐는 메일을 보낸다거나 하여간 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크게 보답할 예정이다.

블로그 포스팅도 방금 PSO감상문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2일 오후 11시 43분.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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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째
역시 예상대로 아직까지는 아무일 없... 나도 정말 '죽은듯이'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책상과 침대를 오가며 conscious와 unconscious를 오가고 있다. 아침에 집에서 전화가 왔지만 집은 실험대상이 아닌지라, 잘 받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전화는 하루종일 전혀 없었다. 엊그제 A한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왔지만 다시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물론 안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내용의 메일이긴 하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3일 24시 33분. (14일 0시 33분)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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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째
부재중 전화
B: 오후 4시 16분, 17분. 안받으니 한번 더 한것으로 보임. 그리고 11시 42분
C: 오후 7시 7분.
둘다 왜 전화했을까.. 그냥 궁금하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4일 23시 42분. 원래 전화가 친구들과 잦았던 건 아니지만, 실제로 나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아져갈 즈음이 되고 이 실험 자체가 나를 더 외롭게 한다. 어쩌면 외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B가 부재중전화를 하나 남긴다. 웬지 고맙다.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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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
월요일이다. 사실 금요일 실험을 기획;;하고 토요일 실행에 옮기면서 아마 월요일까지는 별 일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말에는 다들 쉬느나 바쁘고, 사실 나도 쉬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전화를 안받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았고, 월요일은 다들 바쁜 날이므로 다른 사람을 걱정할 여유가 없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오늘은 오후 6시 33분에 C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안받아서 이상했나보다. B는 어제만 세번을 해보더니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내가 출장이라도 갔나고 생각하나보다. :) 사실 내가 이렇게 여기서 다른 사람들 머릿 속을 들여다보는 거처럼 하는 거도 참 미안한 일이다. 여기까지가 2007년 10월 15일 25시 28분. (16일 새벽 1시 28분.)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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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화요일이다. 월요일까지는 다들 아무 생각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늘도 아무도 반응이 없을 거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최소한 매일같이 저녁을 같이 먹던 D같은 경우는 워낙 무심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밥먹자고 전화라도 할 줄 알았다. 뭐, 나도 최근에 누군가가 내 전화를 안받는거에 마음이 상해서 당분간 전화를 하지 않은 적이 있으니, 먼저 전화했던 B의 경우 혹시 마음이 상해있을지 않을까 생각이 되긴 한다. 하지만 내가 평소에 전화를 잘 안받는 거도 아니고, 부재중 전화가 생기면 바로 call back을 하는 성격이었고, 게다가 msn에 이렇게 오래 존재하지 않는 것도 드문 일인데, 역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필요에 의해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맞는가보다. 과연 나는 그러지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생각보다 외로운 실험이다. 누구나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모든 사람들의 관심 밖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직접 체득하는 것은 좀 다른 경험인 거 같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6일 23시 05분.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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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수요일이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다녀왔다. 생상 교향곡 3번. 아주 멋진 곡이다. 오늘도 아무한테서도 연락이 없었다. 슬슬 외로움보다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확실히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만 사람을 찾는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고 어찌보면 깊은 인간적 관계도 필요의 일부분이다. 나를 돌아보자. 나는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했는가? 다른 사람이 이런 실험을 할 때 나는 그가 기대하는 만큼 채워줄 수 있었겠는가?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반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앞으로 내가 어떻게 대해야할까? 정말 비상상황이 생기면 누구한테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할 것인가? 쓸데없는 문제에서부터 현실적인 문제까지, 모든 종류의 의문이 들게 하는 실험이다. 아직은 내가 이 일련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새로운 생각을 하느냐의 문제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내가 가진 질문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할 거 같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7일 22시 31분.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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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째
목요일이다. 머,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무 연락도 없다. 어제 밤에 생각을 해봤는데, 사람은 필요하거나 필요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한테만 신경쓰는 게 맞는거 같다. 어떤 (arbitary) 사람이 다른 특정 (particular)한 사람이 필요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신경을 쓰는 이유를 전혀 생각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care라는 진리집합은 need라는 진리집합의 부분집합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나를 care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필요없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일주일간 잠수를 해도 아무도 care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그들한테 쓸모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moral은, 내가 누군가 필요로 하고 그가 날 필요로 하길 원한다면 내가 그 사람한테 쓸모있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사람들이 나를 care하지 않는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다. 별개로, 내가 지금까지 앞으로 내가 필요로 할 가능성이 없진 않아도 낮은 사람한테 과하게 신경을 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면에서 나의 payoff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모처럼 나 다운 생각을 하게 되어 기쁘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8일 23시 10분. 이 실험을 어느 선에서 종료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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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째
금요일이다. 아예 오늘은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갔다. 돌아와보니 의외로 부재중 전화가 세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랩에 와있는 방문 연구원이 건거고, 다른 하나는.. 우체국에서 뭘 배달왔었다보다. 아마도 3주쯤 전에 주문한 레이저포인터.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E가 전화한건데... 이 사람은 전혀 의외다. 평소에 왕래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가끔 msn에서 보면 인사나 나누는 정도라. 왜 전화했을까? 무슨 일이 있는건가 하고 걱정이 드는 걸 보니 나는 나다.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인데 못 도와주고 있는 건가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슬슬 이 실험을 끝내야할 거 같다. 아무래도 실험결과를 뒤집을 만한 결과가 나올 거 같지 않다.

이 실험으로 내가 챙겨야할 moral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실 전화를 안하거나 집에 찾아와서 문을 두들기지 않는다고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건 사실 내가 유치한거라 생각한다. 원래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가까운 사람들은 대개 무관심하다기보다 관심을 표현하기에 소극적이다.
둘째로, 필요에는 비용이 따른다. 누군가 나를 인간적인(애매한 단어이지만...) 면에서 필요로 하길 원한다면 그가 페이하는 비용에 상응하는 (인간적인) 가치를 가져야한다.
마지막으로, 분명하게도, 내가 혹시라도 갑자기 쓰러진다면, 그래서 죽는다면 최소 1주일 이내에 발견될 순 없을 거고, 더 나쁜 것으로 내가 내 몸을 못가누게 쓰러지면 그냥 그대로 죽어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거다. 빨리 졸업하고 한국가서 가족이랑 살자 -_-; 아니면 룸메이트를 구하던가. (여자 룸메이트-_-)

토요일 중으로 이 글을 업로드하게 될 거 같다. 여기까지 2007년 10월 19일 24시 28분. (20일 0시 28분).
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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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째, 토요일.
특별한 변동사항 없이 실험 종료.
사실 실험을 하나 안하나 별 다를게 없는게, -_-; 스스로가 좀 불쌍해지기도;;;
한줄요약: 지난 1주일간, 피츠버그 거주하는 주변인물 3명이 6번의 부재중 전화를 남김.
하여간 2007년 10월 20일 16시 00분.

IK

1 comment:

Anonymous said...

진짜 실험했구나 ㅋ 오춘기야 오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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